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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란 종2품 이상의 관원의 묘가 있는 근처 길가에 세우는 비석으로 정3품 당상관(堂上官) 이상의 벼슬을 한사람이 택술(擇述)하는 것이 예이다. 나만갑(1592~1642)선생의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몽뢰(夢賚)호는 구포(毆浦)이며, 광해군 5년(1613)에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나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서궁 유폐 사건으로 낙향, 오로지 학문에 열중하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순릉참봉에 배수되었다 그 해에 알성문과에 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그후 홍문관 교리로 있던 때에 당쟁에 휘말려 강동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627(인조5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에서 인조를 보위 하였다. 환도후 병조정랑, 홍문관 수찬 사헌부 지평등을 두루 거친후 1635년 형조참의로 임금을 보위하였다. 이어 병조 참의가 되고 무고로 남해로 유배되었다가 1639년 영주에서 사망하였으며, 후에 좌의정으로 추증(追曾)되었다. 저서로는 (병자록:丙子錄)(구포집:毆浦集)이 있으며 신도비의 글은 청음 김상헌이 글을 지었고, 추기(追記)는 동춘당 송준길이 쓰고 손자 양좌(良佐)가 지었다. 이외에도 문곡 김수항이 지은 지명(誌銘)과 우암 송시열이 글을 지은 묘표(墓表)가 있다. 1985년 6월 2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더보기이곳은 30대, 2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청평 자연휴양림, 용인자연휴양림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나만갑선생신도비 주변에는 총 5개의 숙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