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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영모정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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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영모정 소개

나주 영모정
활기찬 깨끗한 전통적인

* 귀래정 임붕이 건립한 정자, 나주 영모정 (羅州 永摹亭) *영모정은 중종 15년, 귀래정 임붕이 건립한 정자로 이 지방 출신의 명문장가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글을 배우고 시작(詩作)을 즐기던 유서깊은 건물이다. 초기에는 붕의 호를 따 ‘귀래정’이라 불렀으나 명종 10년, 임붕의 두 아들 임복과 임진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재건하면서 ‘영모정’이라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82년과 1991년에 다시 중건·중수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한 무고주 5량가이다. 세부양식은 두벌대의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기단 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고, 최근에 다시 그 위에 2m 가량의 원형 장대석 주춧돌을 세웠다. 그 위에는 아랫부분을 잘라버린 원형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에는 보와 장혀, 도리를 결구하였다. 굵은 보를 걸치고 동자주를 세워 종보를 걸치고 판대공과 파련대공을 섞어 대공을 놓고 종도리를 설치하였다. 평면은 온돌방 1칸, 루마루 2칸으로 실이 있는 정자건물이다.* 영모정의 볼거리 *영모정은 비교적 건립연대가 빠르고, 주위에 400여년 된 팽나무가 많이 있어 주변경관이 아름답다. 또한 이곳 회진에서 출생하여 조선시대 명문장가로 이름난 백호 임제 선생께서 글을 짓고 사람을 사귀었던 곳으로 문화재적 의의가 더욱 깊은 곳이라 하겠다. 현재는 나주임씨 문중종회소로 이용되고 있다. 한편 영모정 바로 밑 구릉에「귀래정나주임공붕유허비」,「백호임제선생기념비」 2기가 있다.[문화재 정보]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전남기념물 제112호  지정연도 : 1987년 6월 1일  시대 : 조선시대 종류 : 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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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영모정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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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영모정 특징

이곳은 30대, 2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2017국제농업박람회, 무안 가볼만한곳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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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용생가및묘소

문평면 오룡리 오륜마을 깊숙이 나대용장군의 생가가 초가로 복원되어 있다. 그 초가에서 대대로 후손들이 살다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새로 단장했다. 나대용 장군은 임진왜란때 이 충무공 막하에서 거북선 건조에 전력을 기울인 실질적인 공로자로 평가되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전인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인 이순신 장군을 훈련원주부의 신분으로 찾아가 그 제작을 협의하니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았고 그 후 임난이 일어나자 거북선 3척을 처음으로 진수했다 한다. 나대용장군은 충무공과 함께 사천승첩을 비롯하여 당포전, 당항포전, 견내량전, 안골포전, 노량대첩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쾌속정인 해추선을 발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충무전서> <난중일기>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뒷받침해 주고 있다. 묘소는 생가에서 약 2km 떨어진 마전산에 있으며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어 시험했다는 방죽이 마을 앞에 있는데, 지금은 논으로 경작되고 있고 마을 이름도 방죽골이다. 나대용장군은 조선시대 최고의 조선 기술자였다. 이순신장군과 함께 임진왜란 최고의 걸작인 거북선을 만들었고, 이후에도 임진년과 같은 국난에 대비하기 위해 창선, 해추선 등을 만들어 내는 과학자였다. 체암 나대용장군 기념사업회가 1975년 건립한 소충사에서는 장군의 과학적인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4월 22일 '과학의날'에 제사를 모신다. * 양식 - 목조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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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반남 고분군

* 삼국시대, 마한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문화재, 대안리 고분군 *대안리의 동쪽에 위치한 자미산(紫薇山)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에 분포되어 있는 12기의 삼국시대(三國時代) 고분이다. 1917~1918년과 1938~1939년 동안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조사된 이래 현재까지 독무덤 ·돌방무덤[石室墳] 등 12기의 고분이 발굴되거나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4·8·9호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5·6·10·11·12호는 인멸되었다. 4호분은 1978년에 도로공사 과정에서 노출되어 전남대에 재직 중이던 최몽룡교수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7세기대의 백제(百濟) 석실분(石室墳)으로 밝혀졌고 석실은 전남대학교에 이전 복원되었다. 3호분과 9호분은 1918년 일본인 야쓰이(谷井濟一)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8호분에서는 4기의 옹관(甕棺)과 단지·뚜껑·대접·유리옥 등이 출토되었다. 9호분은 대안리 고분군 중 최대 규모이며 9기의 옹관과 함께 금반지·큰칼·구리팔찌·유리구슬·토기 등 유물이 출토되었다. 대안리고분군의 분구 형태는 원형·방대형·사다리꼴 등이고, 규모는 길이 11m 내외(2호분)에서 47m 내외(9호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 마한 토착세력의 무덤으로 추정 *지금까지 1·2·3·4·7·8·9호분이 정비복원되었는데, 최근에 복원된 1·2·3호분에서는 분구 주변에서 모두 도랑이 확인됨에 따라 대안리고분군을 비롯한 반남고분군(潘南古墳群)의 다른 고분들도 대부분 도랑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분구 주변의 도랑은 묘역구분·배수·채토 등 다양한 용도에서 만들어졌다. 내부 매장시설은 4호분과 같이 석실인 경우도 있지만, 나머지 고분들은 여러 개의 옹관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목관(木棺)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된다. 대안리 고분군에는 4호분과 같이 7세기대의 백제 석실분이 섞여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고분들은 백제의 영산강유역 진출 이전에 자리잡고 있던 마한(馬韓) 토착 세력자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중심연대는 반남고분군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4세기말 ~ 5세기초로 판단된다.  * 유물상으로 주목되는 4호분과 9호분 *12기의 고분 중 매장 주체부의 구조나 유물상에서 주목되는 것은 4호분과 9호분이다. 4호분은 파괴된 돌방무덤으로 부여 지역에서 보이는 백제 말기 형식인 판축조평천장식으로 되어 있다. 수습된 껴묻거리에 회색 연질의 긴목병, 적갈색 바리모양토기, 은장도자루, 관고리 및 널못 등이 있는데 이 중 긴목병은 출토예가 많지 않은 희귀한 것이다. 9호분은 그 규모가 동서 44.3m, 남북 34.94m, 높이 8.41~7.35m에 이르는 대형 방대형고분이다. 분구 정상의 평탄면에 9기의 독이 매장되어 있어서 12기의 독이 매장된 신촌리 9호분과 아울러 반남면 고분군 중 최대 고분에 속한다. 또, 분구의 규모가 장대할 뿐만 아니라, 껴묻거리가 많고 다양한 점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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