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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포대 여행 정보

놀러의 인공지능이 분석한 논현포대 여행의 다양한 정보와 주변의 숙소들을 알아보세요.

논현포대 소개

논현포대
조용한 전통적인 한국적인

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축조된 포대. 1982년 3월 2일 인천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다. 병인 ·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경기 연안의 군비강화 필요성을 절감한 정부가 해안을 통해 들어오는 외세를 사전에 방어하기 위해 어영대장 신정희와 강화유수 이경하에게 명하여 군사시설을 확충토록 함으로써 1879년 (조선 고종 16년) 축조되었다. 축조 당시에는 당시의 지명을 따서 호구포대라고 명명하였으나 현재는  논현포대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며, 대포를 올려놓은 대좌인 포좌가 두 개 남아 옛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인천연안은 강화의 바닷길을 통해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당시 많은 포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논현포대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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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포대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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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포대 특징

이곳은 1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논현동, 인천연안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hook

논현포대 여행 관련어

수인선 논현동 인천광역시 남아있다 인천연안 근린공원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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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습지생태공원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에 있는 공원이다. 총 넓이는 약 350만 ㎡에 이른다. 이중 폐염전을 중심으로 66만 ㎡가 1999년 6월 개장되었다. 생태전시관은 염전창고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 벌노랑이와 해당화 등 염생식물의 사진과 소금작업 광경, 소래포구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2001년 4월에는 생태학습장으로 확대하여 공원안내관과 생물벽화관·자연에너지 체험관·인천제21홍보관·인천환경 NGO활동상황관 등이 조성되었다. 전시관 근처에 마련된 자연학습장에서는 생태공원의 식생과 염전에 관한 영상교육을 실시한다. 책상과 의자, 스크린 등의 강의시설이 내부에 마련되어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6~7월과 9~10월에 주 5일간씩 개방하며 학습시간은 20분이다. 염전학습장은 폐염전을 복구한 곳으로 넓이는 약 4만 ㎡이다. 이곳에서 하루 400~1,200kg의 소금을 직접 생산하고 있어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가 있다. 바둑판 모양의 염전과 바닷물을 퍼올리는 물레방아(수차), 인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소금을 채취하는 시간(보통 오후 4시)에 관람하면 직접 가래질을 하며 소금을 채취하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염전학습장 곁에는 맨발로 갯벌에 들어가 게와 조개 등 살아 있는 생명체를 관찰할 수 있는 갯벌체험장도 마련되어 있다. 또 근처에는 붕어와 잉어들이 서식하고 있는 담수연못도 있다. 1999년 6월에 개장해 수도권 시민들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이곳은, 고가 밑에서 5분 정도를 더 가면 닿게 되는데, 입구에 수도권 해양생태공원-해양탐구 자연학습장이란 나무문을 높게 세워두었다.
경치가좋은 사진찍기좋은 기분전환되는
소래습지생태공원 여행 정보 자세히보기

약사사

인천시 남동구 간석3동 중심지에 솟아있는 높이 187.1m의 만월산은 원래 이름이 주안산이다. 인천의 땅이름 가운데 하나인 주안이 바로 이 산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그 원래 위치도 지금의 주안이 아닌 이곳 간석동 일대를 가리키는 곳이었다. 조선 성종때 발간된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인천도호부 북쪽 11리 되는 곳에 주안산이 있다' 고 돼 있는데 이 주안산이 지금의 만월산이다. 주안산은 그 뒤 주안산으로 쓰이기도 해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에는 주안산으로 나타나 있으며, 근세에는 원통산 또는 선유산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이 산의 동쪽에는 고려가 건국될 때 왕명으로 새워졌다는 절 개국사가 있었다. 이 절과 같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려 시대에는 늘 이곳에 100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고 있다해서 백인사라고도 했다. 또, 산 서쪽에는 조선 초에 주안사라는 절이 세워졌는데. 그 뒤 불교를 배척하는 풍토에 밀려 절은 결국 문을 닫고 수행하던 스님들도 뿔뿔이 흩어져 폐허거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 산의 서쪽 기슭에는 행가가 나는 돌 우물이 있어 조선조 세종 때에는 사람들을 보내어 물맛과 향기, 약효 등을 조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그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산이 만월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것은 1932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행하던 보월스님에 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다가 산정상에 올라서 보니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동서 남북이 한눈에 다 보이고, 산세가 팔을 뻗어 시가지를 감싸 안은 듯한 모양을 갖추었기에 그 이듬해 이곳에 작은 암자를 짓게 하고 약사암이라 이름 하였다. 지금의 약사사보다 조금 더 산 위쪽이었는데, 사바세계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설법을 좀 더 쉽게 대할 수 있게 해주려는 뜻이었다. 보월스님은 그 뒤 오래지 않아 금강산으로 돌아갔고, 그를 이어 인천 해광사에서 수도 중이던 한능해 스님이 이곳을 지켰다. 그는 1960년대 들어 지금의 위치에 대웅전 등을 짓고, 약사암을 약사사로 높이어 오늘에 이르게 된다. * 현존건물 - 대웅보전, 극락전, 약사전, 칠성각, 산신각, 미륵불, 독성각, 용국각, 조사당, 일주문 등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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