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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마신원재 여행 정보

놀러의 인공지능이 분석한 두마신원재 여행의 다양한 정보와 주변의 숙소들을 알아보세요.

두마신원재 소개

두마신원재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조선 중기에 건립된 사계 김장생의 9번째 아들인 김비(1913~1699)의 재실이다. 재실은 굴도리계통 정면 4간 측면 1.5칸의 홀처마 팔작지붕이다. 우측 2칸은 온돌방 좌측 2칸은 대청마루 구조이다. 전면에 신원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신원재(愼遠齋)는 부친이 돌아가시자 그의 형제인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과 그 형제들이 1632년 함께 건물을 짓고 이 곳에서 그의 조부 및 부친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선생의 저서 등을 정리 집필하였던 곳이고, 신독재 사후 그의 막내 동생 김비가 황강행장(黃岡行狀) 및 실기(實記), 사계, 신독재 전서 등을 정리 집필하였던 유서 깊은 곳으로써 그 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으나 한옥재실로서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있다. 조선 중기의 전통 한식 목조 와가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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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마신원재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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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마신원재 특징

이곳은 30대, 2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hook

두마신원재 여행 관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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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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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계룡의 추억을 가진 페이스북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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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사

외국인스님들이 한국불교의 간화선을 닦는 수행도량이 바로 무상사다. 무상사에서는 외국인 비구스님뿐 아니라 비구니 스님들이 한국불교의 전통대로 일년에 두 번씩 동안거와 하안거 3개월씩 참선 결제에 들어간다. 또한 승려가 아닌 외국인들도 일주일 단위로 결제에 참여할 수 있다. 결제중에는 방문객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무상사는 외국인스님들에게 한국선불교를 전수하고 외국인들에게 한국불교의 선수행을 가르쳐주고 체험할 수 있기 위하여 2000년 3월 숭산스님의 원력으로 개원한 외국인 전용 사찰이며 국제선원이다. 외국인들이 살고 있는 관계로 요사채는 현대식 시설을 갖추었으며, 각 방마다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계룡산 자락에 자리한 무상사 주변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 쌓여 있어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도량다. 현재까지 30여 개국 600여 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방문하여 참선 수행을 하였다. 무상사에서는 한국어을 사용할 수 없다. 다양한 국가의 외국인들이 입방하는 관계로 영어 이외에 러시아어, 폴란드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가 통용된다. 참선법회도 매주 봉행하고 있으며, 무심스님이 주관하는 참선법회는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법회는 영어로 진행된다.
조용한 전통적인 한국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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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원충신정려현판

조선 성종 때의 문신이자 세종의 둘째아들인 효령대군의 증손자인 이심원(1454∼1504)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 정려문에 내린 현판이다. 이심원은 김종직의 문인으로, 성질이 엄정하고 학문과 의술에 정통하였다. 성종 9년(1478) 주계부정에 제수된 후 성종 18년(1487)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정의대부에 임명되었다. 고모부인 임사홍 부자의 간사한 사실을 알고 성종임금에게 임사홍을 중요한 자리에 쓰지 말 것을 다섯차례나 상소로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 때 임사홍의 모함으로 두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중종 14년(1519) 조광조 ·정광필 등의 상소로 죄를 면하고, 주계군으로 증직되었다. 이후 홍록대부로 추증되어 그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문이 세워졌다. 그의 이러한 행적을『명신록』, 『삼강행실』, 『국고보감』등의 책에 기록하여 학문과 충절을 돋보이도록 하였다. 저서로는 『성광유고』가 있다. 금암동에 있는 주계군 정려는 정면 2간, 측면 1간의 규모이며 철책으로 보호되고 있다. 기단은 막돌을 사용하여 1단을 구축하였으며 그 위에 원형의 주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웠다. 4면은 홍살로 처리하였으며 하방과 중방을 시설하였다. 가구양식은 도리식을 이용했으며, 처마는 겹처마이고, 측면의 박공널 밑에는 방풍판을 설치하여 정려를 보호하고 있다. 정려의 내부에는 명정 현판과 함께 중수기가 있다.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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