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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진 시비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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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진 시비 소개

박두진 시비
깨끗한 전통적인 한국적인

지난 1998년 박두진 시인의 시비가 시인이 어린시절 뛰어놀던 보개면 안성시립보개도서관 입구에 건립되었다. 시비에는 <고향> 전문이 실려있고, <해>의 소재가 되었다는 백운산이 시비를 마주하고 있다. 금광면 오흥리에는 시인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박두진 문학연구소>가 있으며 1982년 시인이 손수 썼다는 친필 현판은 오는 이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시인의 묘소는 보개면 기좌리에 있다. 성시가 지난 6월 21일 남부 프랑스의 고대 로마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는 베종 라 로멘느(Vaison la Romaine)市에 청록파 박두진 시인의 시비를 설치했다. 베종시는 지난 1992년 큰 홍수가 일어났을 때 세계 로터리클럽의 지원으로 복구한 바 있어, 이와 같은 세계인의 우정과 자연의 소중함을 기리기 위해<아홉 아씨 정원 (Le jardin des 9 damoiselles)>을 조성 중에 있다. 이 정원 조성사업은 2000년부터 9개년 사업으로 매년 夏至(6월 21일)에 세계 9개 도시를 선정하고 그 도시를 대표하는 시인의 시비를 설치하는 것으로 작년에는 헬싱키 등 유럽 9개 도시를 대표하는 시비를 설치하였으며 금년 역시 한국, 스위스, 독일 등 세계 9개 도시를 선정, 시비를 설치하고 개막식을 가졌다. 이 개막식에는 안성시 이동희 시장, 우리 재단 파리사무소 김병일 소장 그리고 故박 두진선생의 자제 박영조씨가 참석했다. 한국의 도시 선정은 베종시의 요청으로 국제화재단에서 자치단체의 신청을 받아 이루어졌는데 아시아 도시로는 처음으로 안성시가 선정되었다. 시비에 새겨진 시는 국어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우리에게 친숙한 박두진 시인의 <해>의 일부로 한글과 불어로 시비에 새겨졌다.아울러 베종시 도서관에는 박두진씨의 시집 등 시인에 관한 문헌들이 기증, 보존된다. 이 시비의 설치로 아직 유럽인들에게는 생소한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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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진 시비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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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진 시비 특징

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미리내, 안성쑥고개부대찌개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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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암

국사봉 정상으로 향하면 국사암이라는 작은 절이 바위 틈새를 비집고 앉아 있다. 법당 오른쪽 옆으로 국사봉의 궁예미륵이라 불리는 세 개의 아담한 미륵이 있다. 그러나 이 미륵은 미륵이라기보다 석인상에 걸맞을 정도로 몸의 전체적인 비례에 비해 모자가 거대하고 손 모양도 수인이 아니라 선비들이 합장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목도 지나치게 짧으며 얼굴의 윤곽에는 불상이 주는 이미지나 친근미가 나타나 있지 않는다. 석불의 발목 이하는 땅에 매몰되어 있다. 지상에 노출된 본존의 높이는 320cm이고, 3단의 원형보개를 육계부분에 끼워 놓았다. 얼굴은 타원형으로 두 귀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으며,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에서 손가락을 안으로 모으고, 왼손은 배에 대고 손가락을 쫙 펴고 있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은 통견으로, 양팔에 도식적인 주름을 도시적으로 새기고 있다. 하반신에 U자형으로 주름에 있는 것으로 봐서 군의를 가슴 부위에서 묶은 것으로 보는데, 허벅지 위에 커다란 연화문을 새겨놓았다. 우협시와 좌협시 역시 둥근 보개를 쓰고, 본존과 동일한 표현자세를 하고 있는데 크기가 약간작고, 들고 있는 지물 육화장과 합이 다를 뿐이다. 불상의 후면에는 아무런 조각을 가하지 않았다. 이 석조삼존 입상은 조각수법이나 형태를 보아 조선후기나 근대에 미륵신앙의 유행과 더불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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