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는 모든 여행자의 취향을
존중하는 여행 포털서비스입니다.
가격대와 평점 선택
1박 요금 (단위 : 원)
평점

부산동명불원 여행 정보

놀러의 인공지능이 분석한 부산동명불원 여행의 다양한 정보와 주변의 숙소들을 알아보세요.

부산동명불원 소개

부산동명불원
깨끗한 전통적인 한국적인

* 한국에서 만나는 동남아시아 사찰, 동명불원 *용당동 용비산(龍飛山)에 자리 잡고 있는 동명불원(東明佛院)은 동명목재 회장 고 강석진씨가 국가번영과 부모의 왕생극락을 빌고 동명의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1만여명의 동명 가족들의 행운을 위해 건립했다.대부분의 우리나라 사찰이 한국 전통 양식인데, 이 절은 동남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용마루가 곧게 뻗어 있고 미얀마의 고탑에서 발굴된 부처의 사리를 모셔 놓았다. 이곳에 안치된 목조개금불상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것이다. 범종 또한 한국 최대 규모로 27t이나 되는데 에밀레종보다 6t 정도 더 무겁다고 한다. 동명불종은 종두(鐘頭)에 사룡이 새겨져 있는데, 종래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기법이다.대웅전 내부에는 석가세존을 중심으로 좌편에 미륵보살, 우편에 제화 갈라보살 등 3본을 모셨고, 좌불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16m이며 법당의 크기도 498.84m²(150.9평)이나 된다. 법당의 가운데에는 기둥없는 특수 공법을 사용했고 내부 천장의 중앙에 4마리의 용머리를 조화시켰으며 양쪽 벽에는 비천상을 새겼다. 극락전 나한전 관음전이 갖추어져 있었고,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은 2층으로 설계하고 2층에는 불교서적을 진열했다. 사천왕문의 설계는 입상으로 하였고 효자 효부를 기리기 위해 만든 덕성탑 남자의 덕망과 여자의 덕성을 상징하며 모든 선남선녀는 불법에 귀의하여 덕망과 부덕을 잘 닦아야 한다는 뜻을 담은 부덕탑이 있다. 산신각의 산신은 불원이 자리잡은 산령님을 정중히 모셨다. 동명불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대관문이 있고 주변에는 인공으로 된 바위만한 정원석을 쌓아 사찰의 위용을 돋보이게 했다. 트럭 1대에 정원석 1개를 싣고 올 정도로 큰 돌들 뿐이다.* 세계 최대의 법종, 동명불종 *동명불원에는 법구사물 중 하나이며 세계최대의 법종인 동명불종이 있는데 무게가 27톤으로 경주 에밀레종보다 6톤이나 무겁다. 종의 사방면의 모양은 연화좌 위에 무릎을 세우고 공양하는 공양상과 비천상 주위에 보상화를 구름과 같이 피어오르게 한 것으로 되어 있고 천상으로 천의와 영락등이 휘날리고 있는 에밀레종(국보29호)의 비천상과 구름 위에 서서 서로 마주보며 무릎을 세우고 하늘을 날며 공후와 생을 주악하는 강원도 상원사종(국보36호) 비천상의 두 모습을 참고하였다. 문양에 있어서도 장식문형과 비천상, 여래상, 보살상, 동자상 등 상징적인 조상이 있으나 이 불종은 비천상의 문양을 택하였다. 무거운 거종을 메어 단 들보에는 관세음보살 육자 대명왕 진언 옴마니반 메홈의 범자가 씌어 있다. 박달나무의 종채는 네 가닥의 쇠사슬로 매어져 있고, 좌우 양편에서 두 사람이 치도록 되어있다. 종의 북쪽면은 동명불종이라는 이름을 새겼고, 남쪽면은 서기 1976년 4월 8일 단기 4309년 4월 8일로 조성시기를 밝혀 놓았다.

더보기

부산동명불원 날씨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산동명불원 특징

이곳은 30대, 5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부산 차돌박이, 부산 1박2일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hook

부산동명불원 여행 관련어

부산 수영구 맛집 부경대 맛집 경성대 부경대 맛집 강가네 용호동 부산 이기대 맛집 하늘한우 부산 장수두부 애국돼지 남구 맛집 부산 차돌박이 대연동 고기집 부산 현지인 맛집 옛골토성 부산 1박2일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산 남구의 추억을 가진 페이스북 친구

페이스북으로 연결하여, 친구와 여행을 떠나보세요

페이스북 인기 장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다른 지역

고원희가옥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옛 집터를 그 후손들이 여러차례 고쳐지은 집이다. 이 집은후손들이 여러 차례 고쳐 지은 집으로 현존 가옥은 1917년 건축한 것이다. 예전에는 더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현재는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 대문등이 남아있다. 대문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이다. 사랑채는 정면 네칸 측면 한칸으로 앞뒤로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두벌대 기단위에 덤병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의 방 3개와 한칸의 대청을 1단 높혀 누(樓)마루로 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여섯칸, 측면 한칸에 전후좌우에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외벌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앞열은 원형 그 외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원형 기둥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내부가구는 고주위에 대량을 걸치고 판대공을 놓았으며 구 위에 종도리를 놓았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반의 부엌, 두칸의 대청, 한칸의 방으로 되어 있다. 창호는 전체가 양쪽으로 열어지는 문이며, 방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넉살창이 있다. 숭정기원후오갑정사윤이월초구일(崇禎紀元後五甲丁巳閏二月初九日)이라는 상량문에 글씨가 쓰여 있는데 이것으로 건립연대가 1917년임을 알수 있다. 사당은 고경명장군과 그 아들 종후, 인후 형제의 부조묘이다. 이 사당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으로 앞에만 마루가 있으며 맞배지붕이다. 외별대의 낮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현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첨자형의 포로 결합하였고, 초익공 위에는 용두를 빼내고 장혀와 굴도리를 얹었다. 내부가구는 대량위에 동자주를 얹고 종보를 걸친 뒤 그 위에 다시 판대공을 놓았으며, 겹처마에 조잡한 모조 단청을 하고 있다. 건립연대는 안채보다 빠른 시기로 추측된다.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고원희가옥 여행 정보 자세히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