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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오리돈대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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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오리돈대 소개

분오리돈대
경치가좋은 사진찍기좋은 즐거운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돈대. 분오리 돈은 부천(富川)과 초지(草芝)의 외곽포대로서 망월돈(望月墩)·계룡돈 (鷄龍墩)·굴암돈(堀岩墩)·송강돈(松剛墩)·송곶돈(松串墩)과 함께 영문(營門)에 소속되었던 돈대이다. 따라서 영문에서 돈장(墩將)을 따로 두어 수직하게 하였다. 조선 현종때 유수 서필원이 정비하였고 포자 4문과 치첩이 37개소이며 부천과 초지의 외곽포대이다. 분오리 돈은 부천(富川)과 초지(草芝)의 외곽포대로서 망월돈(望月墩)·계룡돈 (鷄龍墩)·굴암돈(堀岩墩)·송강돈(松剛墩)·송곶돈(松串墩)과 함께 영문(營門)에 소속되었던 돈대이다. 따라서 영문에서 돈장(墩將)을 따로 두어 수직하게 하였다. 뒷산에서 해안으로 돌출되어 나온 산 능선의 끝부분에 위치하였는데, 좌우로 깊게 만곡(彎曲)된 갯벌을 이룬 포구를 끼고 있어 가시 범위가 매우 넓다. 동쪽으로는 자연암반을 그대로 활용하여 석축함으로써 절벽을 이루고, 지형에 맞추어 석벽을 쌓아 전체적으로 반월형을 하게 되었다. 포좌는 4문이고 치첩(雉堞)이 37개소이다. 기록에 의하면 방형(方形)으로 둘레 84보라 하였는데, 현재 문루 안 포대둘레는 약 70m이다. 홍예문을 이룬 출입구는 북쪽 반월형의 호와 선이 맞닿는 부분에 있고, 최고높이는 4m, 폭은 12.8m이며, 돈대의 평균높이는 2.62m이다. 구조는 다른 돈대와 마찬가지로 내외를 석축한 협축의 석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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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오리돈대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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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오리돈대 특징

이곳은 30대, 2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동막해변, 동막해수욕장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hook

분오리돈대 여행 관련어

유형문화재 동막해변 인천국제 마니산 사기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동막해수욕장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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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곶돈대

갑곶돈은 고려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며,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이다.삼국시대 강화를 갑비고차 (甲比古次)라 부른데서 갑곶이라 이름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고려 때 몽고군이 이곳을 건너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워도 건너갈 수 있을 텐데’라 한탄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다.갑곶돈대는 고려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후 조선 인조 22년(1644)에 설치된 제물진(갑곶진)에 소속된 돈대로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다. 고종 3년(1866) 9월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극동 함대가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0월에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은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게 패하여 달아났다. 1977년에 옛터에 새로이 옛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이 이루어졌다. 지금 돈대안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 면적 - 3,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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