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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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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소개

사직단
기분전환되는 숨어있는 유명하지않은

* 신에게 제를 올리던 곳, 사직단(社稷壇) *갑오년(1984) 이후 광주의 여제와 함께 폐지되었으며, 한말에는 사직단을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하기도 했었다. 동물원이 들어서면서 그 자취가 없어졌는데, 1993년 광주시가 사직단을 복원, 1994년 광주 향우회 회장(최기영)에 의해 1백년 만에 사직제가 부활되었다.  사직단은 국토의 신과 오곡의 신, 두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다. 국토와 오곡은 민생의 근본이므로 삼국 시대부터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사직단을 설치하여 친히 왕이 나가서 제사를 올렸다. 지방에서는 성주가 제주가 되었으므로 광주 목사가 매년 제사를 주관하였다. 사직단은 종묘와 함께 신성시되어 종사(宗社)라고도 했다.  사직제는 매년 맹춘(정월) 상신일에 기고제(그해 풍년을 비는 제), 중춘(음력6월), 중추(음력 8월) 상무일, 납일(음력 12월 8일)에 걸쳐, 네 차례 거행되었으며, 가뭄에는 기우제, 비가 많이 오면 '기정제', 눈이 오지 않으면 '기설제'를 지냈다. 또한 사직제는 혈제(血祭)라 하여 제수에 돼지머리나 양머리를 날것으로 봉헌했다.  * 사직단이 있는 사직공원에 대하여 *사직공원의 터는 원래 사직단이 있던 곳이다. 1894년 제사가 폐지되고 1960년대 말에 사직동물원이 들어서면서 사직단은 헐리고 말았다. 그 뒤 사직단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자 1991년 동물원을 우치공원으로 옮기고 사직단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직공원은 각종 수목 및 화초들의 조경이 잘 되어 있으며 특히 매년 4월 15일을 전후해서 벚꽃이 만발, 광주시는 이 무렵이면 밤에 전등을 가설하여 시민들이 밤에도 벚꽃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시민들이 가장 즐겨찾는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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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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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특징

이곳은 2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종묘, 경복궁사직단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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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희가옥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옛 집터를 그 후손들이 여러차례 고쳐지은 집이다. 이 집은후손들이 여러 차례 고쳐 지은 집으로 현존 가옥은 1917년 건축한 것이다. 예전에는 더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현재는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 대문등이 남아있다. 대문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이다. 사랑채는 정면 네칸 측면 한칸으로 앞뒤로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두벌대 기단위에 덤병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의 방 3개와 한칸의 대청을 1단 높혀 누(樓)마루로 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여섯칸, 측면 한칸에 전후좌우에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외벌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앞열은 원형 그 외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원형 기둥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내부가구는 고주위에 대량을 걸치고 판대공을 놓았으며 구 위에 종도리를 놓았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반의 부엌, 두칸의 대청, 한칸의 방으로 되어 있다. 창호는 전체가 양쪽으로 열어지는 문이며, 방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넉살창이 있다. 숭정기원후오갑정사윤이월초구일(崇禎紀元後五甲丁巳閏二月初九日)이라는 상량문에 글씨가 쓰여 있는데 이것으로 건립연대가 1917년임을 알수 있다. 사당은 고경명장군과 그 아들 종후, 인후 형제의 부조묘이다. 이 사당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으로 앞에만 마루가 있으며 맞배지붕이다. 외별대의 낮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현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첨자형의 포로 결합하였고, 초익공 위에는 용두를 빼내고 장혀와 굴도리를 얹었다. 내부가구는 대량위에 동자주를 얹고 종보를 걸친 뒤 그 위에 다시 판대공을 놓았으며, 겹처마에 조잡한 모조 단청을 하고 있다. 건립연대는 안채보다 빠른 시기로 추측된다.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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