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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건축형식을 알 수 있는 가옥, 양진당 *양진당은 조선시대 문신 검간(黔澗) 조정(趙挺)이 1626년(인조 4) 안동 임하 천천동에 있던 처가 문중의 99간 가옥을 옮겨지은 것이다. 검간(黔澗) 조정(趙靖)선생의 연거소로 양오진(養五眞)의 뜻을 취하여 당명(堂名)을 삼은 것이라 하겠다. 1807년(순조 7)에 중수하였고 1966년 대홍수 때 사랑채는 쓰러져 버렸다. 오랫동안 수리하지 않아 안채 23칸만 남은 것을 1981년에 전면 해체·복원하였다. 건물의 구조를 보면 약간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정면은 9칸이나 되고 승제하게 된 고상형으로 남방 다습 지역의 주거형인 우란에 유사하다. 원래는 口字型 이었으나 지금은 좌우가 약간 다른 ㄷ字型으로 남았으며, 좌측은 창고로, 우측은 방을 만들었고 정면의 좌측3칸도 방이며 우측은 마루,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원래 이 건물은 검간 선생의 처가인 안동 임하면 천전동에서 이건해 온 것으로 그때의 규모로 99칸이었다고 전한다. 정침은 방을 두 줄로 배치한 겹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면은 누각형, 뒷면은 일반형인데 이다. 이는 한겨울 차가운 공기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는 북방식 구조이며, 이처럼 남방식과 북방식의 특징을 고루 갖추었다는 점에서 조선 중기 우리나라 가옥의 다양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양진당의 유래 및 역사 *양진당은 여러 번 중수를 거듭하였는데, 1981년 11월에 해체하는 과정에서 종도리(宗道理)에서, "숭정후(崇禎後)180년 丁卯 11月 18日 乙卯상택주(上宅主) 조술겸(趙述謙)"(1807년 순조 7년)이란 기록과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상량문에는"천계 6년 병인(天啓六年 丙寅) 12월 28일 병진(丙辰) 상감훈(上籃薰) 조기원(趙基遠) 이란 기록이 있어 이때는 1626년(인조 4) 임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보면, 양진당은 1626년에 건립하고 1807년에 중수하였으며, 1980년에 건물을 해체하고 1981년에 다시 복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양진당은 건립 이후 존모(尊慕)의 현장으로 강학(講學)의 현장으로, 문회(文會)의 현장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 [문화재 정보]지정번호 : 보물 제1568호 지정연도 : 2008년 7월 10일 소장 : 풍양조씨 장천파 문중 시대 : 조선시대 분류 : 가옥
더보기이곳은 30대, 2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상주 경천대, 군위 가볼만한곳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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