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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야 고분군 여행 정보

놀러의 인공지능이 분석한 아라가야 고분군 여행의 다양한 정보와 주변의 숙소들을 알아보세요.

아라가야 고분군 소개

아라가야 고분군
힐링하기좋은 추억의 개인적인

* 전국 최대의 고분 구역, 아라가야 고분군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은 가야읍에서 함안면 방향으로 가는 지방도를 따라가면, 오른쪽 야산 구릉지대에 남북으로 2km 이상 대형 고분 40여기 등, 총 153기가 밀집되어 있는 전국 최대의 고분지역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함안은 본래 아시랑국, '아라가야'라 하기도 하였으며, 가야는 신라 때 멸망당했으므로 이 고분군들은 가야 국왕들의 묘로 보인다.   * 함안 말이산 고분군(도항리 고분군과 밀산리 고분군) *도항리 고분군은 면적 41만 1340㎡로 얕은 구릉지대에 현재 약 70기 정도 산재해 있다. 봉토 높이 4m 정도, 저경(底徑) 15m 내외의 비교적 대형이며, 내부구조는 함안 말산리 고분군(末山里古墳:사적 85)의 34호분처럼 직사각형 앞트기[橫口] 돌덧널[石槨]무덤으로 추정되는데, 대부분 도굴되었다. 말산리 고분군은 면적 2만 200m2로 마산에서 진주까지 국도쪽으로 뻗은 길쭉한 구릉 위에 44기가 있다. 34호분은 봉우리의 정상 전부를 차지할 정도의 거분으로서, 봉토의 지름 40m, 높이 10m나 되어, 함안일대의 고분 가운데 가장 크다. 이 고분은 1917년에 발굴 조사되었는데, 내부구조는 남북으로 된 널방[玄室]의 길이 9.7m, 너비 1.72m, 높이 1.62m의 규모로, 지평선상의 야석축(野石築) 앞트기[橫口]식 석실이다. 네 벽은 직립, 천장은 판석(板石) 13매로 덮고 천장석 위에 진흙을 발랐는데, 널방 바닥에는 작은 돌을 깔았다. 벽에 석회칠을 하지 않았으나, 못이 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채화장막(彩畵帳幕)을 드리운 것으로 추측된다. 널방 북부에는 많은 토기들이 놓여 있고, 유해는 입구쪽에 머리를 남침(南枕)으로 하고 눕힌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나온 검(劍)자루에는 일본 특유의 직고문각제(直孤文角製) 장식이 있어 주목을 끌었다. 토기 가운데는 새무늬 및 수차형(水車形) 토기가 1개씩 포함되어 있어 출토지가 확실한 동물형 토기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편, 말산 47호분의 한 뚜껑돌[蓋石]의 표면에 ‘壽下王’이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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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야 고분군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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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야 고분군 특징

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함안 강주마을, 금오산 짚라인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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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야 고분군 여행 관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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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동유적지

* 고려의 충절을 지킨 이오 선생의 고려인 마을, 고려동유적지 *고려동유적지는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이오 선생은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 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을 하였다. 이오는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았다. 또 아들에게도 새 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이며,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위패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자손들은 19대 60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살았다. 뿐만 아니라 벼슬보다는 자녀의 훈육에 전념하여 학덕과 절의로 이름 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다.   * 고려동 유적지의 볼거리 *현재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고려전답, 자미단(紫薇壇), 고려전답 99,000㎡, 자미정(紫薇亭), 율간정(栗澗亭), 복정(鰒亭) 등이 있다. 후손들이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벼슬길에 나아가기보다는 자녀의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학덕과 절의로 이름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이곳을 1983년 8월 2일 기념물 제56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문화재 정보]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경남기념물 제56호  지정연도 : 1983년 8월 2일  소장 : 이홍섭  시대 : 조선  종류 : 유적지  크기 : 면적 8,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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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정

* 조선시대 풍류를 즐기던 곳, 무진정 *무진정은 풍류를 즐기기 위해 언덕 위에 지어진 정자이다. 이 정자는 조선 명종 22년(1567)에 무진(無盡) 조삼(趙參)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세우고, 선생의 호를 따서 무진정(無盡亭)이라고 하였다. 무진은 조선 성종 14년(1483)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의 목사를 지냈고,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겸 춘추관(春秋館) 편수관(編修官)을 지냈다.   * 무진정의 형태와 구조 *앞면 3칸·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의 가운데 칸에는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9년 4월에 중건한 것으로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이 단순 소박하게 꾸민 팔작지붕의 건물로 조선 초기의 정자형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앞뒤의 퇴를 길게 빼고 중앙의 한 칸을 온돌방으로 꾸며놓았다.   [문화재 정보]지정종목 : 시도유형문화재  지정번호 : 경남유형문화재 제158호  지정연도 : 1976년 12월 20일  시대 : 조선시대종류 : 누(정)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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