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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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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소개

안동 하회마을
아늑한 유명하지않은 즐거운

안동 하회 마을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민속 마을이다.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아 돌아가며 물돌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의 집성촌으로 지금도 마을주민의 70%가 류씨이다. 풍산 류씨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약 600여 년 전으로 류씨가 터를 잡기 전에는 허씨와 안씨가 먼저 이곳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구전으로는 하회탈의 제작자가 고려 중엽의 허도령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고 하며, 하회마을에서 강 건너 광덕동에는 허정승의 묘가 있어 해마다 류씨 가문에서 벌초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회마을에는 이를 빗댄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 류씨 배판"이라는 속언이 전해지고 있는데, 선주민들을 내몰게된데는 안씨집안의 딸 하나가 류씨집안으로 출가를 하면서 안씨 집안의 기운이 외손인 류씨들한테 이어져 씨족의 터전을 빼았기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하회마을은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2005년 미국 부시 대통령의 방문지로 국제적인 매스컴에 오르기도 했던 마을이다. 서애 류성룡의 임진왜란 회고기인 '징비록'과 하회탈 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보물이 4점, 중요민속자료가 10점, 사적 1곳 등이 있고, 1984년에는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이 되었다.하회탈춤으로 이름이 알려진 별신굿 탈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서낭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행하던 탈놀이다. 국내 탈춤중 가장 오래 되었고, 1928년 일본 감점기때 강제로 중지 되었다가 이후 다시 복원 되었다. 놀이마당은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과 선비마당, 혼례마당, 신방마당의 여덟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보 121호인 하회탈은 지금은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 9개의 탈만 전해지며, 이 중 3개의 탈은 분실되었다.하회마을의 고택중 양진당이라는 입암고택은 풍산류씨 겸암파의 대종택으로 보물 제306호이다. 사랑채는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안채는 조선의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는 고려와 조선의 건축양식이 공존하는 고택이다. 하회마을, 또 하나의 보물인 충효당은 보물 414호로 서애의 문하생들이 장손 류원지를 도와서 지었고, 증손자 류의하에 의해 중수된 조선시대 사대부 양식의 고택이다. 충효당의 바깥마당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기념식수가 있다. 이외에 하회마을에는 풍산 류씨 귀촌파의 종가집인 귀촌고택, 마을 복쪽의 99칸집으로 불린 북촌댁, 또하나의 99칸집인 조선 정종 21년에 지은 남촌댁, 병산서원, 화천서원, 강건너 류성룡의 옥연정사 퇴계 이황의 글씨가 편액으로 남아 있는 겸암정사 등 볼거리가 너무 많은 곳이다.하회마을은 또한,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이기도 하다. 배용준이 주연한 스캔들, YMCA야구단, 한반도 등 한국의 영화사를 장식할 만한 굵직 굵직한 영화들이 이곳 하회마을을 배경으로 촬영이 되었다. 그만큼 다른 세트가 필요 없을 만큼 옛 전통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상혼에 의해 퇴색되어가는 감도 없지 않지만, 전통을 보존하려는 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많은 부분 극복 되어가고 있다.이곳 하회마을의 대표적인 먹거리는 안동소주와 유명한 서원이 많아 생기게 되었다는 헛제사밥, 안동 간고등어, 안동 국시 등이 있고, 신라 시대 창건되었다는 봉정사, 고산서원, 귀래정, 계명산 자연휴양림, 학가산 자연휴양림, 와룡산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2010년 7월 31일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한국의 역사마을'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두 마을의 등재로 한국의 세계유산은 석굴암ㆍ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이상 1995), 창덕궁, 수원 화성(1997),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ㆍ화순ㆍ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 그리고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 조선왕릉(2009)에 이어 통산 10번째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영국 여왕의 방문으로 더 유명해진 마을, 안동하회마을(영국여왕방문코스) *하회마을은 풍산 류(柳)씨가 대대로 살아오던 전형적인 집성촌으로 한국 전통가옥의 미(美)가 살아 숨쉬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의 대유학자 겸암 류운룡 선생과 서애 류성룡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한 안동 하회마을은 1999년 4월 21일에는 방한 3일째였던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한국 전통의 고장으로서 방문하여 더욱 유명해졌다.이곳 하회(河回)라는 지명은 낙동강물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S자형을 이루면서 마을을 감싸도는 데서 유래했다. 동으로는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이 있고 그 줄기의 끝이 마을까지 뻗어서 아주 낮은 구릉을 이루고 있다. 집들은 구릉을 중심으로 낮은 곳을 향하여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집의 좌향이 일정하지 않고 동서남북 각각으로 집들이 앉혀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을 중심부에는 류씨들의 집인 큰 기와집이 자리잡고 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된 초가집 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앞쪽에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멋드러지게 깎아지른 부용대,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울창한 노송숲이 절경을 이룬다. 한편, 부용대앞에 물길이 다시 열려 나룻배를 이용할 수 있다.* 하회마을의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 *하회마을에서는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상설공연으로 진행하고, 매년 가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진행하며 주변에는 신라 시대 창건되었다는 봉정사, 고산서원, 귀래정, 계명산 자연휴양림, 학가산 자연휴양림, 와룡산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특히, 2010년 7월 31일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한국의 역사마을'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두 마을의 등재로 한국의 세계유산은 석굴암ㆍ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이상 1995), 창덕궁, 수원 화성(1997),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ㆍ화순ㆍ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 그리고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 조선왕릉(2009)에 이어 통산 10번째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하회마을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는 안동소주와 유명한 서원이 많아 생기게 되었다는 헛제사밥, 안동 간고등어, 안동 국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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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특징

이곳은 20대, 3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안동 가볼만한곳, 안동 하회마을 숙박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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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목사

* 마음의 눈을 뜨게 만드는 사찰, 개목사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절집 건축물이 있는 안동 봉정사의 위쪽에 있다. 통일신라 초기에 의상대사가 천등산 중턱에 세운 절로 원래는 흥국사라 하였다. 의상대사가 신통한 묘술로 하루에 1시간씩 99일 동안 99칸의 거대한 절을 지었는데, 그 후 이 절은 부처의 영험이 많이 나타나 많은 불도들이 찾아와 기도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현재는 보물 242호로 지정된 원통전만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개목사 원통전은 조선 세조 3년에 건립되었다 한다. 측면에서 볼 때 전면으로 퇴간을 달아 맞배지붕의 박공면이 전면으로 길게 나와 있다. 공포는 전, 후면이 다른 수법으로 되었는데 전면은 출목없이 익공형으로 조각되었고 후면은 1출목을 두어 외목도리를 받게 하였다. 내부는 연등천장으로 상부가 노출되었으며, 초각한 파련대공과 솟을 대공을 두어 종도리를 받게 하였다. 솟을대공 수법 역시 고식의 하나로 되어있다.  * 개목사의 이름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 *개목사란 이름이 생긴 것에 대해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온다. 하나는 <영가지(永嘉誌)>에 실린 내용으로 원래는 절 이름을 흥국사(興國寺)였다. 당시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 많았는데 절 건립 소경들이 없어졌다 하여 이름을 개목사(開目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조선 초기의 재상인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이 안동부사로 부임해 와서 보니 경상북도 안동의 지세가 눈병 환자가 많을 형상이어서 개목사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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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정

* 성성재 금난수가 세운 정자, 고산정 *고산정은 정유재란시 안동 수성장으로 활약하여 좌승지에 증직된 바 있는 성성재 금난수(惺惺齋 琴蘭秀 1530∼1599)선생의 정자이다. 선생의 행상(行狀)에 따르면 선생이 35세되던 1564년(명종 19)에 당시 선성현(宣城縣)의 명승지일(名勝之一)이었던 가송협(佳松峽)에 짓고 일동정사(日東精舍)라 부르며 늘 경전을 가까이 한 채 유유자적하였다 한다. 안동팔경의 하나인 가송협의 단애(斷崖)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주위에는 외병산(外屛山)과 내병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낙동강의 상류인 가송협의 건너에는 송림과 함께 독산이 솟아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건립당시 사정과 주위의 절경에 대해서는「일동록(日洞錄)」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여기에 따르면 창건 당시부터 예안지방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알려져 그의 스승인 퇴계(退溪)선생도 누차 문인들과 함께 와서 영시유상(詠詩遊賞)하였다 한다. '고산제영'(孤山題詠)에는 퇴계문도를 비롯하여 재경관인(在京官人)들까지 찾아 차운(次韻)한 시(詩)가 수백 수에 달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3m가량의 축대를 쌓아 대지를 조성한 후, 얕은 기단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다. 모두 원주를 사용하였는데 주두상부에는 보아지를 끼웠으나 외부에는 초각을 하지 않고 내부에만 초각을 하였다. 5량가인데 종량 위에는 키 큰 동자주를 세워 여기에 소로를 끼워 장혀와 창방을 받게 하였으며, 좌측 마루상부에는 우물반자를 설치하였고 귀에는 선자연을 걸었다. 어간의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좌, 우에 온돌방을 꾸몄는데 좌측방은 통간으로 하였으나 좌측방은 뒤쪽의 1간만을 온돌방으로 꾸며 결국 마루는 ㄱ자형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전면과 양측면에는 계자난간을 둘렀는데 정자로의 출입은 난간의 양측 끝에서만 하게 하였다. 주위의 빼어난 경관과 잘 어울리게 조성한 조선시대 정자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고 건물도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 성성재 금난수 선생에 대하여 *금난수는 35세인 1564년(명종 19)에 이미 안동 예안면(禮安面) 부포리에 있는 현재의 성성재 종택(경북문화재자료 264) 아래쪽에 성재(惺齋)라는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고산정은 그 후에 지은 정자로서, 주변 경관이 뛰어나 이황을 비롯한 선비들의 내왕이 잦았던 곳이다. 정자 앞으로 강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맞은편 산기슭에는 물맛 좋은 옹달샘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예전에는 이곳에 학이 많이 서식했다고 하나 지금은 없다. 정자 왼쪽에 조선총독부에서 세운 조학번식지(鳥鶴蕃殖地)라는 천연기념물 비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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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 유일재고택

* 아름다움이 있는 조선 시대 고택, 광산김씨 유일재고택 *광산 김씨 유일재공파의 종택이다. 이 파의 선대는 퇴촌 김열을 파조(派祖)로 하고 있다. 그의 23세손인 담암 김용석[1453∼]이 풍천면 구담리로 낙향하였고 이후 유일재 김언기대에 이르러 와룡 가야로 이거하였다. 그리고 1700년대말 그의 9대손인 도상(道常)이 이곳으로 옮기면서 이 집을 구입하였다고 전한다. 건립년대는 1600년대 말로 추정된다. * 유일재 고택의 형태 *이 집은 마을 뒷산 중턱에 남향으로 자리잡았으며, 구[ㅁ]자형의 정침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은 정침의 좌후방 약간 높은 언덕 위에 남서향으로 배치돼 있다. 정침은 전면 중문간을 중심으로 좌우에 사랑채와 행랑채가 일려로 연접하여 일자형을 이루었고 이들 각각이 양 익사로 안채와 연결되어 폐쇄적인 구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는데 사랑채는 좌측으로 돌출되어 날개 모양을 하고 있다. 기단은 상면이 몰탈로 마감돼 있고, 주초는 자연석으로 만들어 각주를 세웠는데, 귀를 접어 올려 다소 둔중한 느낌을 감해 주고 있다.  [문화재 정보]- 분 류 : 가옥- 지 정 : 경상북도민속자료 제113호- 지정일 : 1996.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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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흥사

* 다양한 문화재가 있는 사찰, 광흥사 *학가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광흥사는 신라 신문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뒤 수차례 중수(重修) ·중창(重創)하여 대찰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46년에는 학서루(鶴棲樓)와 대방(大房)이 퇴락되어 무너져 예전의 풍모를 갖추고 있지 않다. 보물 제314호와 제315호로 지정되어 있는 취지금니묘법연화경과 백지 묵서묘법연화경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응진전을 중심으로 명부전·종루·산령각·요사채 등의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응진전은 2009년 현재 광흥사의 주전(主殿)으로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다. 화재로 소실된 대웅전에 있던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다. * 광흥사에 가치를 알려주는 다양한 문화재 *문화재로는 보물 제314호인 『취지금니묘법연화경』과 보물 제315호인 『백지묵서묘법연화경』, 문화재자료 제165호인 응진전이 있는데, 『취지금니묘법연화경』과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취지금니묘법연화경』은 2권 2첩으로 크기는 가로 11㎝, 세로 31㎝이고, 만든 시기는 고려 후기로 추정된다.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은 1398년(창왕 원년)에 장묘우가 죽은 부모를 위하여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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