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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사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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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사 소개

안일사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 비슬산 중턱에 자리한 사찰, 안일사 *안일사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산 225번지 비슬산 중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많은 위락시설과 체육시설, 등산로가 완비되어 대구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앞산은 예로부터 고려 태조 왕건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오는 사찰이 3곳 있다. 은적사와 임휴사, 그리고 안일사이다.  이 중 앞산 안지랑골에 자리한 안일사는 옛날 태조 왕건이 공산에서 후백제 견훤과 맞서 싸우다 대패한 후 팔공산을 떠나 피신하면서 은적사에서 몸을 숨기고 이 곳에 와서야 편안히 쉴 수 있었다고 해 안일사(安逸寺)로 이름지은 곳이다. 지금도 안일사가 위치한 안지랑골 안에는 왕건이 숨어들었다는 왕굴이 남아있다.  안일사는 원래 신라 경순왕대에 창건한 사찰로 이미 오랜 역사를 간직해 오고 있었다. 앞산은 흔히 비슬산 혹은 대덕산이라고 불리워지고 있으나 안일사가 자리한 곳은 보통 비슬산이라고 부른다. 달성, 현풍에 걸쳐 있는 비슬산은 예로부터 수많은 사찰이 산재하고 있는 한국불교의 또 다른 영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안일사가 자리한 곳 역시 비슬산 중턱으로 멀리 대구시내가 아름답게 조망되는 자리에 있어 시민들과 순례자들의 꽉 막힌 마음 속을 탁 트이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또한 안일사는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운동가들이 비밀리에 국권회복운동을 펼쳐나간 뜻깊은 장소이기도 해 우리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역사적 성지라는 사실도 안일사를 더욱 빛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일사는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창건 후의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단지 일제강점기 이후의 역사는 조금이나마 더듬어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안일사는 기존의 대웅전을 헐고 대웅전 신축불사를 시작으로 일주문, 종각, 요사채 불사를 진행하고 있어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안일사는 1990년부터 시내에서 포교당과 함께 유치원을 운영하기 시작, 지역 내 대표 유치원이자 어린이포교의 중심도량으로 발돋움해 나가고 있다.  * 안일사에 숨어 있는 31운동 정신 *1915년 1월 15일 윤상태(尹相泰)·서상일(徐相日)·이시영(李始榮) 등 13인이 이 절에 모여 우리 나라의 광복을 위해 일할 것을 서약하고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조직한 바 있다. 1932년 경송(慶松)이 중창하였으며, 3·1운동 때 3·1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민족대표 33인 중 1명인 용성(龍成)이 중창하여 유성사라고도 하였다. 1970년대 말 주지 철인(哲印)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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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사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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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사 특징

이곳은 10대, 3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성암산, 비파산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hook

안일사 여행 관련어

비파산 전망대 성암산 대덕식당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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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희가옥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옛 집터를 그 후손들이 여러차례 고쳐지은 집이다. 이 집은후손들이 여러 차례 고쳐 지은 집으로 현존 가옥은 1917년 건축한 것이다. 예전에는 더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현재는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 대문등이 남아있다. 대문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이다. 사랑채는 정면 네칸 측면 한칸으로 앞뒤로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두벌대 기단위에 덤병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의 방 3개와 한칸의 대청을 1단 높혀 누(樓)마루로 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여섯칸, 측면 한칸에 전후좌우에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외벌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앞열은 원형 그 외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원형 기둥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내부가구는 고주위에 대량을 걸치고 판대공을 놓았으며 구 위에 종도리를 놓았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반의 부엌, 두칸의 대청, 한칸의 방으로 되어 있다. 창호는 전체가 양쪽으로 열어지는 문이며, 방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넉살창이 있다. 숭정기원후오갑정사윤이월초구일(崇禎紀元後五甲丁巳閏二月初九日)이라는 상량문에 글씨가 쓰여 있는데 이것으로 건립연대가 1917년임을 알수 있다. 사당은 고경명장군과 그 아들 종후, 인후 형제의 부조묘이다. 이 사당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으로 앞에만 마루가 있으며 맞배지붕이다. 외별대의 낮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현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첨자형의 포로 결합하였고, 초익공 위에는 용두를 빼내고 장혀와 굴도리를 얹었다. 내부가구는 대량위에 동자주를 얹고 종보를 걸친 뒤 그 위에 다시 판대공을 놓았으며, 겹처마에 조잡한 모조 단청을 하고 있다. 건립연대는 안채보다 빠른 시기로 추측된다.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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