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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 16년(1691년)에 선조의 제향시 재숙(齋宿)하는 곳으로 사용됨과 동시에 후손들이 학문을 강론하고 탐구하는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한 성하식(成夏植)선생이 이곳에서 훈장을 지냈으며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세천재(歲薦齋)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두리기둥으로 자연석 기단위에 호박돌 주초를 양측에 온돌방을 두고 중앙에 2칸의 대청마루를 두었다. 온돌방 전면으로 반캄퇴에 마루를 설치하고 난간을 설치했다. 방과 마루 사이는 네짝문으로 가운데 한짝씩을 열고 위로 달아매는 형식의 벽전체를 열도록 계획하였다. 방 후면에 벽장을 두고 천장은 고미반자를 설치했다. 공포는 익공식으로 하였으며, 가구형식은 5량가로 팔작지붕이다. 전형적인 재실건축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건축기법에 고식(古式)이 그대로 남아 있다. 충북의 남부이남 추풍령이 가까이 있어 추위를 막기위한 고미반자를 두었으며 측면을 2칸으로도 가능하나 방 후면으로 기둥을 두어 3칸으로 구성하였다. 초익공 초가지에 연봉을 초각하고 보머리에 봉두를 초각하였다.
더보기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한천팔경, 영동시장 맛집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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