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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서의 대표적 호국 사찰, 영은사 *19세기에 편찬된 《공산지(公山誌)》에 따르면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절 주변에 흩어져 있는 석탑 재료가 고려 초기의 유물이므로 그때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일설에는 1458년(조선 세조 4) 세조의 명으로 창건되었다고도 한다. 세조 때에는 묘은사(妙隱寺)라고 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들이 모여 훈련을 받고 승병장 영규(靈圭)의 지휘 아래 금산전투에 참여하였다. 1616년(광해군 8) 이 절에 승병장을 두고 도내 사찰을 관리하게 하였다. 특히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인조가 이 절로 피난을 오기도 하였다. 이때 절 이름을 영은사로 고쳤으며, 인조가 이 절이 국방의 요지임을 깨닫고 승병을 계속 주둔하게 함으로써 호서의 대표적 호국사찰이 되었다. 건물로 원통보전과 관일루(觀日樓) 등이 있다. 이중 원통보전은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51호로 지정된 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관세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 뒤에는 후불탱화와 칠성탱화·신중탱화·산신탱화·독성탱화가 걸려 있다. 이중 후불탱화는 1888년(고종 25) 약효(若效)가 그린 것이고, 나머지는 최근 제작된 것이다. 관일루는 ㄷ자형 맞배지붕 건물로,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합숙소로 쓰이던 건물이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옛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 영은사의 유물 *유물로 1715년(숙종 41) 서산의 문수사(文殊寺)에서 제작된 동종이 전해진다. 경내에는 석탑 부재와 초석·장대석 등이 남아 있다. 이중 석탑 부재는 옥개석으로 가로 80cm, 세로 80cm, 높이 21cm 규모이며, 우물의 뚜껑으로 사용되고 있다. 장대석은 요사 기단부와 관일루 기단부, 원통보전 계단 등에 끼어 있다.
더보기이곳은 20대, 3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육화탑, 비래봉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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