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는 모든 여행자의 취향을
존중하는 여행 포털서비스입니다.
가격대와 평점 선택
1박 요금 (단위 : 원)
평점

오웬기념각 여행 정보

놀러의 인공지능이 분석한 오웬기념각 여행의 다양한 정보와 주변의 숙소들을 알아보세요.

오웬기념각 소개

오웬기념각
북적거리는 즐거운 쾌적한

* 오웬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한 건물, 오웬기념각 *기독병원 간호전문대학 내에 있는 오웬기념각은 배유지 목사와 함께 전남 최초의 선교사로 들어와 광주에서 순교한 오웬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미국 친지들이 보낸 기금 4,200 달러로 1914년에 세워진 연면적 434평방미터(부속건물 포함)인 양옥건물이다. 이 건물은 평면 형태로 보아 예배당 및 집회실로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되나, 지금은 기독병원 간호전문대학의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웬은 1900년대에 광주에 들어온 양림동의 서양촌 외국인 중 1명으로서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선교 및 의료봉사 활동에 헌신하다가 과로로 1909년에 죽었다. 오웬은 생전에 그의 할아버지 기념병원을 지으려다 선교 활동이 급하다고 판단하여 먼저 할아버지 기념각을 지을 계획을 수립 하였으나, 그 계획이 추진되기 전에 사망하였다. 기념관 현판에 할아버지 WILLIAM L.의 이름이 새겨진 것도 이 때문이다. 현판의 내용은 "IN MEMORY OF WILLIAM L. AND CLEMENT C.OWEN. 吳基冕乃其 祖事兼之紀念閣" 영문과 한문으로 씌여 있다. * 건물 구조 및 건축양식 *회색 벽돌의 2층 건물로서 평면 형태는 정방형이나 대각선상의 모서리에 위치한 설교단을 중심으로 좌우대칭 형태이다. 주 출입구는 북쪽과 서쪽에 똑같은 모양으로 있으며 동쪽과 남쪽에는 모서리에 조그마한 문으로 된 부출입구가 있다. 1층 바닥은 모서리의 설교단을 향하여 약 0.9/10의 경사가 져 있으며, 2층의 노대(balcony) 역시 설교단을 향해 1.2/10 경사져 있다. 벽은 길이 225mm, 나비 110mm, 두께 55mm의 회색벽돌을 사용하여 네델란드식 쌓기를 하였다. 벽의 두께는 49cm로 공간쌓기를 하였으며 지면과 면하는 고막이 부분은 장대석의 화강석으로 축조하였다.  1층과 2층 사이에는 벽돌의 허리 돌림띠를 두었으며 2B 두께의 붙임기둥을 설치하였다. 개구부에는 창, 문 모두 동일한 형태의 결원아치를 사용하였으며 하인방의 창대돌은 화강석으로 되어 있다. 또 정면의 작은 광창에는 창대 돌을 마구리 내쌓기한 벽돌이 지지하고 있다. 양쪽의 현관부분은 아치벽돌을 사용한 반원 아치로 key stone은 화강석으로 되어 있으며 porch의 천장은 나무널로 마무리되어 있다. 그리고 석조로 된 아치대를 받치고 있는 기둥에 커다란 원형 주철관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지붕의 구조는 맨사드 지붕틀로서 평보를 내부에 설치된 2개의 기둥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굴뚝이 올라와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함석 잇기를 하였다. 실내의 바닥은 마루널을 설교단을 향하여 경사지게 깔았으며, 벽은 회반죽으로 마감하였다.  [문화재 정보]지정번호 : 광주유형문화재 제26호  지정연도 : 1998년 5월 7일  소장 : 학교법인 광주기독병원교육재단  시대 : 1910년대  분류 : 누(정)각  면적 : 434㎡  

더보기

오웬기념각 날씨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웬기념각 특징

이곳은 20대, 1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진월동 전라도이야기, 미쓰램주월점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hook

오웬기념각 여행 관련어

광주 타코 광주 핫타코 우리소나주곰탕 진월동 전라도이야기 광주 맛집 광주동구맛집 남구 맛집 봉선동 핫타코 미쓰램주월점 광주 전라도이야기 광주 멕시코음식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광주 남구의 추억을 가진 페이스북 친구

페이스북으로 연결하여, 친구와 여행을 떠나보세요

페이스북 인기 장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다른 지역

고원희가옥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옛 집터를 그 후손들이 여러차례 고쳐지은 집이다. 이 집은후손들이 여러 차례 고쳐 지은 집으로 현존 가옥은 1917년 건축한 것이다. 예전에는 더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현재는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 대문등이 남아있다. 대문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이다. 사랑채는 정면 네칸 측면 한칸으로 앞뒤로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두벌대 기단위에 덤병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의 방 3개와 한칸의 대청을 1단 높혀 누(樓)마루로 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여섯칸, 측면 한칸에 전후좌우에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외벌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앞열은 원형 그 외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원형 기둥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내부가구는 고주위에 대량을 걸치고 판대공을 놓았으며 구 위에 종도리를 놓았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반의 부엌, 두칸의 대청, 한칸의 방으로 되어 있다. 창호는 전체가 양쪽으로 열어지는 문이며, 방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넉살창이 있다. 숭정기원후오갑정사윤이월초구일(崇禎紀元後五甲丁巳閏二月初九日)이라는 상량문에 글씨가 쓰여 있는데 이것으로 건립연대가 1917년임을 알수 있다. 사당은 고경명장군과 그 아들 종후, 인후 형제의 부조묘이다. 이 사당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으로 앞에만 마루가 있으며 맞배지붕이다. 외별대의 낮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현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첨자형의 포로 결합하였고, 초익공 위에는 용두를 빼내고 장혀와 굴도리를 얹었다. 내부가구는 대량위에 동자주를 얹고 종보를 걸친 뒤 그 위에 다시 판대공을 놓았으며, 겹처마에 조잡한 모조 단청을 하고 있다. 건립연대는 안채보다 빠른 시기로 추측된다.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고원희가옥 여행 정보 자세히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