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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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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소개

용주사
개인적인 엄숙한 조용한

융건릉을 빠져 나오면 1.7km지점에 숲으로 둘러싸인 용주사가 있다. 행정구역상으론 태안읍 송산리지만 융건릉을 모신 화산 뒤쪽인 동쪽기슭이다. 이곳엔 본디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염거화상이 창건한 갈양사가 있었다. 고려 광종21년(970)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수륙재를 개설하는 등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때 소실된 후 폐사가 되었으나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고 낙성식날 밤 정조가 꿈을 꾸니 용(龍)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龍珠寺)라 했다고 전한다. 정조는 용주사를 중창할 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목판에 새겨 보존하도록 명을 내리고 당대 제일의 화가 김홍도에게 맡겨 아름답게 꾸미도록 했다. 50여 목판과 함께 대웅전 옆 잔디밭에는 10개항에 이르는 부모은중경을 새긴 탑비가 우뚝 서 있다. 대웅전 후불탱화는 김홍도의 지휘로 그려진 걸작이고 정조대왕이 심었다는 대웅전 앞 회양목은 수령이 무려 200여년이 넘는 천연기념물 제264호이다. 범종각의 동종도 상원사 동종, 국립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 등과 더불어 손꼽히는 걸작이고 역시 국보 제120호이다. * 주요문화재 1) 용주사 범종(국보 제120호) 2) 회양나무(천연기념물 제264호) 3) 금동향로(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호) 4) 청동향로(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호) 5) 상량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호) 6) 전적수사본(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호) 7) 병풍(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호) 8) 대웅전후불탱화(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호) 9) 불설부모은중경판(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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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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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특징

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송산한정식, 용주사 송산한정식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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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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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주변에는 총 1개의 숙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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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도

국화도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소재지에서 남서부 28㎞ 지점에 위치한 섬으로, 섬 동쪽은 당진군 석문면, 북쪽은 입파도와 인접된 유인도로 바지락·굴 등 어패류 채취를 주업으로 하는 도서지역 어촌마을이다. 국화도는 꽃이 늦게 피고 늦게 진다고 해서 늦을‘만(晩)’자를 써 만화도라 불렸으나, 일제시대 국화가 많이 피는 섬이라 해서 국화도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국화도는 실제로 섬 전체에 들국화가 지천으로 피어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국화도는 배를 타고 장고항에서 10분, 궁평항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하며, 걸어서 2시간이면 섬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섬이다. 가까운 거리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섬이며, 장고항에서 바라보는 국화도는 섬을 온통 뒤덮고 있는 소나무숲 때문에 사람이 살지 않는 섬처럼 보이기도 한다.국화도 옆에는 형제처럼 나란히 선 도지섬과 작은 매박섬이 있는데, 썰물 때 국화도와 도지섬 사이, 국화도와 매박섬 사이의 갯바위와 모래밭이 드러나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 이 바닷길 주변에는 고동을 비롯한 각종 조개가 지천으로 깔려있어 누구든지 호미와 망태기를 하나 들고 나서면 조개를 채취할 수 있다.국화도 선착장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면 바위가 많은 동쪽 해안과는 달리, 조개껍질과 모래가 적당히 어우러진 해수욕장이 활처럼 동그랗게 펼쳐져 길게 이어져 있다. 이 해수욕장은 경사가 심하지 않고 물이 맑아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어 여름 휴양지로도 우수한 곳이며,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갯벌체험장이 있어 아이와 함께 고둥과 조개 등 다양한 해산물 잡이 체험이 가능하다.
경치가좋은 기분전환되는 엄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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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모성지

남양 성모 순례지는 병인년(1866년) 대박해 때 많은 순교지들이 피 흘리며 죽어간 무명 순교지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는데 치명일기(致命日記)와 증언록에 기록이 전해지는 남양의 순교자는 충청도 내포 사람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용인 덧옥돌 사람 정 필립보, 수원 걸매리 사람 김홍서 토마 네 사람뿐이다. 남양 순교지는 다른 순교지와는 달리 무명 순교자들의 치명터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오다가, 1983년부터 성역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작은 정성들을 모아 가꾸어져 오던 남양 순교지는 1991년 10월 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성모께 봉헌되고 한국 천주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순례지로 공식 선포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화성시에서 화성8경 중의 하나로 지정하여 홍보하고 있을 만큼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남양순교성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강암의 대형묵주알, 그리스도왕상, 성모동굴, 오솔길 소자상, 요셉성인상 등이 있으며, 아늑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성지 조성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 성모님 품 같이 아늑하고 포근한 경관을 지닌 곳으로 시민은 물론 전국의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 겸 휴식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 순교지로서의 남양 조선조 때 남양은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행정과 사법권을 부여받은 종삼품의 도호부사가 부임했던 곳이다. 남양부사는 경기도 관찰사의 감독 아래 이반행정에 관한 권한 외에도 민사소송과 형사범을 다루는 사법권까지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남양은 물론 그 인근에서 붙잡은 천주교인들을 도호부사가 있던 남양으로 끌어다가 처형했다. 그리고 남양은 지리적으로도 신앙 활동이 자유로웠던 중국과의 연락이 용이한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조 당시 이곳에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찾아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남양과 이웃해서 백학 교우촌이 있던 것도 이곳이 순교지가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기록에 나타난 순교자들 - 김 필립보(1818~1868) 충청도 내포사람으로 조모의 가르침에 따라 입교하려 했으나, 부친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은 후 후일 반대하던 부친과 함께 교리를 배워 영세했다. 전교도 열심히 했고 사제의 공소 방문 때는 사제의 성무를 도왔으며 교우들이 바른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병인년 대박해 때 피신하여 살다가 1868년 남양 감영 포졸에게 아내 박 마리아와 함께 붙잡혀 남양으로 끌려왔다. 이 부부는 온갖 형벌에도 배교치 않았으며 한달 동안의 옥고 끝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나이 50세였다. - 박 마리아(1818~1868) 순교자 김 필립보의 아내로 1868년 남편과 같이 남양 감영 포졸에게 잡혀서 남편과 함께 남양으로 끌려와 한달 동안의 옥고와 가혹한 형벌을 이겨내고 남편 김필립보와 같이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나이 50세였다. - 정 필립보(?~1867) 경기도 용인의 것옥골에서 살았는데, 1866년 11월 남양 감영의 포졸에게 붙잡혀 가옥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다음 해 1867년 1월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 김홍서 토마(1830~1868) 수원 갈매리 사람으로 1868년 남양 감영의 포졸에게 아내와 함께 감옥에 끌려왔다. 아내는 배교하여 풀려났으나, 김홍서 토마는 끝내 배교치 않고 김 필립보 부부와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배교한 아내는 김홍서 토마가 순교하자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렀다. 순교자 김홍서의 나이는 3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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