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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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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소개

용화사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 다양한 문화재를 만날 수 있는 사찰, 용화사(상주) *용화사는 함창읍 증촌리에 있는 사찰. 용화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누가, 언제 초창하였는지는 현재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전설에 의하면 이곳이 본래 신라 문무왕 때 의상조사가 처음 창건한 상안사의 유지라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함창읍지』에 이 절을 가리켜, ‘사창(司倉) 뒤 현탑동에 신라 고찰인 큰 절이 자리하는데, 석조 미륵상 2위가 있다’ 라고 적혀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석조 미륵상 2위가 바로 약사전에 봉안된 불상들로, 석조여래좌상과 또 다른 석불입상인데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 밖에 전하는 연혁은 없지만, 경내에 석탑과 석등, 주초석 등 여러 가지 오래된 석재편들이 있어 이곳이 오래된 절터임을 알 수 있다.  * 용화사에 있는 다양한 유물들 *용화사의 법당 안에 석불입상 보물 제118호, 석불좌상 보물 제120호, 각 일구가 봉안되어 있고 경내에도 석탑 및 석탑재, 광배편, 장대석 등 많은 석조의 부재가 동리 인근에 산재하고 있었던 것을 절 안에 모아두고 있다. 석탑은 법당을 중건할 때 동편 옆집으로부터 옮긴 것이며 법당 안의 석불 양구도 석탑 북쪽 대지 위에 있던 것을 현재의 자리에 보물 제118호 석불 입상은 한 장의 판석으로 여러 입상을 양각하였으며 판석은 곧 광배를 이루고 있는데 그 표면은 마멸이 심하여 화염문을 조각한 것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하여 섬세한 조각의 부분은 알 수 없으나 조형이 정제되고 조성 수법도 우수하다. 원만하고도 미려한 상호라든가 당당한 양쪽 어깨와 가슴, 그리고 부드러운 양팔의 표현은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에서 느껴지는 인상으로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물 제120호인 석불좌상은 주존으로 봉안하고 있는데 광배는 없으나 대좌를 갖추고 있다. 대좌는 상, 중, 하대의 석 장의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덟 모로 조각한 하대석에는 복판연화문이 조각되어 있고 중대석에는 별다른 조식이 없으며 상대석은 원형으로 조성되었고 칙면에 앙연을 홑잎으로 각 여덟 각에 꽃잎을 한 개씩 조각하고 각 면에도 꽃잎을 한 개씩 배치하여 합해서 열 여섯 개의 꽃잎인데 각각 꽃잎 안에는 다시 이중의 화판 장식이 있다. 불상은 운모가 많이 섞인 화강석으로 조성된 여래상으로 전면적으로 마손이 심하여 풍부한 인상을 감하고 있으나 상호가 원만하고 양쪽 어깨가 당당하여 통일 신라의 작품으로 추측되며 양쪽 손과 발의 조각이 둔중하고 의문이 선명하지 못한 점으로 보아 신라 하대인 9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측할 수 있다. * 용화사에 안치된 보물,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118호/1963.01.21 지정)이 불상은 광배와 불상이 하나의 돌로 조각된 높이 1.98m의 석불입상으로 용화사의 지장전(地藏殿)에 상주 증촌리 석불좌상(보물 120)과 함께 안치되어 있으며, 화강암을 다듬어 부조한 불상이다. 마멸이 심해서 세부수법을 자세히 살펴 볼 수는 없다.  불상의 머리는 확실히 구별할 수 없지만 민머리처럼 보이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있다. 얼굴은 길고 풍만한 모습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지만 단정한 인상이다. 체구는 단정하며, 양 어깨에 걸쳐 있는 옷자락은 간결하게 표현되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 역시 많이 마모되어 가장자리에 새겨진 불꽃무늬만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증촌리석불입상은 불상의 신체 굴곡도 약하지만 처진 어깨나 딱딱한 양손에서 정지된 위축감이 있다. 체구는 단정하면서 다소 경직되었고 현실적인 면이 강해진 사실 양식을 나타낸다. 얼굴과 신체가 아담하고 볼륨감이 적어지는 경향을 보여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석불입상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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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특징

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인천용화사, 통영 용화사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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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경천대

* 하늘이 내린 절경, 낙동강 경천대 *낙동강 1,300여 리 물길 중 강의 이름이 되었을 정도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경천대. 는 깎아지른 절벽과 노송으로 이루어진 절경이 빼어난 곳으로, 하늘이 스스로 내렸다고 해 자천대(自天臺)라고도 한다. 그러나 채득기가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이란 글을 새긴 뒤 경천대로 바꿔 불렀다.조선조 이 지역 출신의 선비인 우담 채득기 선생이 지은 정자인 무우정(舞雩亭)이 절벽 위에 위치한다. 경천대 내에는 전망대, 인공폭포, 경천대 어린이랜드, 야영장이 있다. 경천대 입구에서 언덕을 넘어 강가로 나가면 그 길가에 식당, 매점이 있어 관광객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경천대는 절벽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대단히 멋진 곳으로, 휘어진 소나무 사이로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과 강변 기암괴석을 볼 수 있다.* 경천대의 다양한 이야기와 볼거리 *경천대는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도 이용되었으며, 조선시대 장군 정기룡이 하늘에서 내려온 용마를 얻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정기룡이 바위를 파서 말먹이통으로 쓰던 유물이 남아 있다. 상주에서는 선비들의 모임 장소로 유명하여 김상헌과 이식·이만려 등의 문객들이 자주 찾았다고 한다.옥주봉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멀리 주흘산(1,106m)과 학가산, 낙동강과 백화산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망대로 오르는 등산로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어 삼림욕장으로 알맞다. 인근에 경상북도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된 전사벌왕릉과 전고령가야왕릉(경북기념물 제26호), 충의사 등 문화재가 많다. 그리고 2001년 가을에는 경천대 남쪽 강가에 MBC 드라마 “상도”의 저자거리 세트장이 들어서서 또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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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사

* 어산 불교음악의 최초 전래지, 남장사 *노악산 중턱 산자락에 자리한 남장사는 신라 42대 흥덕왕 7년에 진감국사 혜소스님께서 개창하시고, 고려 명종 16년에 현위치에 옮겨 짓고 남장사라 개명하였다 한다. 특히 어산(범패) 불교음악의 최초 전래지이다.  보광전 철조 비로자나불과 전단향나무로 조성해 봉안한 후불목각탱은 국내에서 우수한 걸작으로 불교미술을 대표한다. 1978년 7월 영산전의 후불탱화에서 주불과 16나한상을 조성할 때,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 4과와 칠보류들을 봉안했다는 기록과 함께 사리 4과 및 칠보류가 발견되었다. 1997년에 조계종 총무원으로부터 전국 2230개 사·암 중 6개 전법도량의 하나로 지정 받아 지역사회에 일익을 담당 큰 역할을 다하고 있다. 사회변동에 주도적으로 대응 역사인식과 전통사찰로서 복지관·자활후견기관을 수탁받아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기도와 수행의 대표적 가람으로 우뚝 서 있다.  * 남장사의 유래와 걸어온 길 *남장사는 832년(흥덕왕 7)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창건하여 장백사(長栢寺)라 하였으며, 1186년(명종 16) 각원(覺圓)이 지금의 터에 옮겨짓고 남장사(南長寺)라 하였다. 그 뒤 1203년(신종 6) 금당을 신축하였고 1473년(성종 4)에 중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뒤 1635년(인조 13) 정수(正秀)가 금당 등을 중창하였다. 1621년(광해군 13) 명해(明海)가 영산전(靈山殿)을, 1704년(숙종 30)에는 진영각(眞影閣)을 신축하였고, 1709년에는 민세(旻世)가 영산전을 중수하였으며, 1761년(영조 37)에 상로전(上盧殿)을 신축, 1807년(순조 7)에 중수하였다. 1856년(철종 7)에 진허(鎭虛)가 극락전과 조사각을 중건하였으며, 1867년(고종 4)에는 응월(應月)이 영산전을 중수하고 1889년에는 보광전을, 1903년에는 함월(涵月)이 칠성각을 건립하였으며, 1907년에는 덕암(德巖)이 염불당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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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음산

* 불교 문화가 살아있는 산, 노음산 *노음산(露陰山,725.4m)도 상산 삼악의 하나로 일명 노악(露嶽)이라고도 하며 상주의 서쪽을 진호하는 산이다.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보은읍 방향으로 4km 남짓한 거리에 있으며, 산세가 부드러운 산으로 상주시의 진산이다.  노음산은 영남 8경의 하나로, 고려 말에는 대 시인 조운흘(趙云?)이 이 산에 우거하여 명시를 남겼는가 하면, 보광전에 연해 있는 청천료(淸泉寮, 교남 강당)는 승려만이 아니라 상산 선비들의 문회, 시회의 공간이 되어 많은 시문을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이 산에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유서깊은 두 사찰, 남장사와 북장사를 품고 있다. 830년 이전에 장백사(長栢寺 현, 南長寺 전신)가 있어 진감국사가 동국 최초로 범패를 보급한 곳이요, 남장사(南長寺)에는 불교문화의 귀한 보물이 많다. 보광전에 안치된 철조 비로자나불(보물 990호)과 철불 좌상의 후불탱인 보광전 목각탱(보물 922호)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한국 最古의 목각불탱인 관음선원(觀音禪院) 목각탱(보물 923호)등은 불교예술의 걸작품들이라 하겠다. 또한 노음산의 서편 북장사(北長寺)뒷산을 천주산(天柱山)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도 북장사 상련암 등의 많은 사찰이 있었다. 북장사의 창건 연대는 남장사와 비슷하리라 추정된다. 이곳에는 파랑새(중국승)가 그렸다는 화법이 절묘한 보물괘불이 있고, 조선 후기의 석학 식산 선생(息山先生)의 문집 목판을 보관하고 있다.  * 호젓한 산행을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노음산 산행 *일반적인 산행의 들머리는 남장사로 들어가는 도중에 있는 제실저수지 둑 앞 왼쪽 능선이다. 찔레덩굴과 잔솔이 많은 계곡을 통해 주능선에 이르면 참나무와 단풍나무로 덮인 숲길이 나온다. 첫째 봉우리를 넘어서면 깎아지른 절벽이 내려다보이며 두 번째 봉우리인 암봉을 지나 주봉에 이른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인적이 드물어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정상에서 서쪽 아래로 북장사가, 남쪽 아래로 남장사 일대가 보인다. 정상을 거쳐 남장사로 내려오는 길은 약 8km에 3시간이 걸리고 남장사에서 중궁암을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능선을 따라 북장사로 내려오는 길은 약 13km에 이른다.[문화재 정보]1) 남장사석장승(민속자료 제33호) 2) 보광전목각탱(보물 제922호) 3) 남장사철불좌상(보물 제 990호) 4) 관음선원목각탱(보물 제923호)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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