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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흥사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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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흥사 소개

운흥사
깨끗한 멋스런 낭만적인

* 외가집 앞마당처럼 푸근한 사찰, 운흥사 *운흥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 151번지 최정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의 말사이다. 보슬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 산사에 가보면 이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싱그러움이 있다. 요사채 마루에 턱 걸터앉아 풍경소리와 계곡의 물소리를 함께 들으며 인공과 자연의 조화를 즐겨보는 것도 그만의 매력이다.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아무래도 맑은 계곡과 풍부한 수림, 고즈넉한 산사의 풍광이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대구 달성의 운흥사는 그런 절 중의 하나이다. 비슬산에서 뻗어 솟구친 최정산 중턱에 자리한 운흥사는 아래로는 대구의 상수원인 가창댐을 굽어보고 울창한 숲이 외호하는 자리에 다소곳이 틀어 앉아 있다. 또한 운흥사를 비껴가는 계곡의 수질이 좋고 최정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좋아 인근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운흥사는 신라시대의 고찰로 사명을 2번 바꾸었고 사찰의 위치 역시 옛 자리의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이 곳에서 승병을 지휘해 왜적을 격퇴했다고 전한다. 무언가 사연이 있고 역사도 간직하고 있지만 현재의 운흥사는 있는 듯 없는 듯 산사가 가지는 미덕과 운치만을 간직한 채 유유히 자적하고 있다. 특히 경내의 아름드리 벚나무와 예쁘게 단장해 놓은 연못이 가람과 어우러져 마치 외갓집 앞마당처럼 푸근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운흥사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로 이루어진 단촐한 살림이지만 주변의 청정한 자연환경만은 운흥사가 가지는 크나큰 ‘재산’이다. 최근에는 사찰의 운영을 신도들에게 공개하고 재정과 프로그램을 투명하게 이끌어 보려는 사찰의 노력이 더해져 주변의 모범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운흥사는 내외적으로도 조화를 이뤄가고 있는 것이다. 운흥사가 아름다운 절이라고 여긴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 운흥사의 유래 *신라 흥덕왕(재위:826∼836) 때 운수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동림사(棟林寺)라고 불렀다. 절이 3개 군의 경계에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자 당시 주지가 절을 조용한 곳으로 옮기려고 하였더니 한 노인이 나타나 절 앞의 연못을 메우면 된다고 하였다. 이에 연못을 메웠으나 신도들이 하나도 오지 않자 절을 곡산(谷山)으로 옮기고 수암사(燧巖寺)라 하였다. 그러나 역시 신도가 없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절 이름을 운흥사로 바꿨더니 번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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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흥사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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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흥사 특징

이곳은 5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운흥사대웅전, 화순 운주사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hook

운흥사 여행 관련어

운흥사대웅전 불회사 쌍계사 화순 운주사 석장승 와룡산 통도사 괘불탱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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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장사

* 사명대사의 기운이 서려있는 사찰, 남지장사 *남지장사(南地藏寺)는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 최정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684년(신라 신문왕 4)에 양개 스님이 창건하였다.  신라 때에는 왕이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고 유지들도 시주를 많이 하여 사세가 매우 컸다. 한때는 8개 암자를 거느렸고 수도하는 승려만도 3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 대사 유정(惟政) 스님이 남지장사를 승병의 훈련장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왜군에게 점령되어 불에 탔다. 1653년(효종 4) 인혜(印惠)가 중건하였고, 1767년(영조 43) 모계(慕溪)와 풍흡(豊洽)이 중창하였다. 모계가 중창한 뒤 팔공산 동화사 부근의 북지장사(北地藏寺)와 대칭되는 곳에 있는 절이라고 해서 절 이름을 남지장사로 바꿨다고 한다. 그 전의 절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1940년대에 신원(信元)이 중수한 이후 꾸준히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 남지장사의 볼거리 *남지장사에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설현당·삼성각·광명루·요사 등이 있으며, 절 앞에 모계와 운계(雲溪)·경운(景雲)의 송덕비가 서 있다. 부속 암자로는 청련암(靑蓮庵)과 백련암(白蓮庵)이 있다. 이 중 청련암은 대웅전 동쪽에 있는 암자로 유정이 수행하던 곳이다. 1990년에 보수한 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다. 백련암은 청련암과 반대쪽에 있으며 비구니 수행처로 알려져 있다. 또, 인근에는 1789년(정조 13)에 세워진 녹동서원이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 귀화한 김충선(金忠善) 장군을 모신 서원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이다.
깨끗한 경치가좋은 추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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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삼가헌 고택

달성군 하빈면 묘동은 사육신 중 하나인 충정공 박팽년(1417∼1456) 후손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달성 삼가헌 고택은 박씨 집성촌과는 낮은 산을 경계로 하고 있다. 삼가헌은 박팽년의 11대 손인 성수聖洙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기의 호를 따라 삼가헌이라 한 것에서 시작한다. 그 뒤 그의 아들 광석光錫이 1783년 이웃 묘골에서 현재 위치로 분가한 다음 1826년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별당인 하엽정(荷葉亭)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으로 1826년 집을 지을 당시 많은 흙을 파낸 자리에 박광석의 손자 규현이 1874년에 연못으로 꾸며 연을 심고 파산서당을 앞으로 옮겨 지으면서 하엽정이라 당호를 붙였다. 삼가헌三加軒이라는 이름은 중용에서 나왔다. 중용 제 9장에는 子曰 天下國家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中庸不可能也(자왈 천하국가가균야, 작록가사야, 백도가답야, 중요불가능야) 라는 문구가 있다. 이 글은 "천하와 국가는 다스릴 수 있고, 관직과 녹봉도 사양할 수 있고, 날카로운 칼날 위를 밟을 수도 있지만 중용은 불가능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천하를 다스림은 知이고, 작록을 거부하는 것은 仁이며. 칼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은 勇에 해당한고 한다. 즉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는 것이다. 하엽정은 원래 4칸 규모의 1자형 건물이었는데 앞에 누마루를 한 칸을 늘여 붙였다고 한다. 연못은 앞쪽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이고 가운데 원형 섬이 있고 섬까지는 외나무다리가 있어다. 이 별당은 원래 서당으로 쓰던 곳으로 앞에는 <하엽정>이라는 당호와 함께 <파산서당巴山書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안채는 전면 6칸 전퇴집으로 3평주 삼량집으로 2009년 4월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었다. 전체적으로 볼때, 조선 중기에 건축된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남긴 대표적인 주택이다.
깨끗한 전통적인 한국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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