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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적사 여행 정보

놀러의 인공지능이 분석한 은적사 여행의 다양한 정보와 주변의 숙소들을 알아보세요.

은적사 소개

은적사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 대구 시민이 즐겨찾는 사찰, 은적사 *은적사는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 앞산공원 중턱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고려 태조의 숨은 자취 간직한 비슬산(琵瑟山) 은적사(隱跡寺). 푸른 숲과 맑은 공기, 각종 위락시설이 어우러져 있어 대구시민들이 즐겨 찾는 앞산공원은 비슬산 또는 대덕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앞산에는 골짜기가 많기로 유명한데 큰골, 고산골, 안지랑골 등 비교적 크고 이름난 골짜기가 있는가 하면 용두골, 메자골, 달비골 등 작고 아담한 골짜기도 많다.  이 중 큰골에 자리한 은적사는 앞산에 자리한 임휴사, 안일사와 아울러 고려 태조 왕건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의 싸움에서 대패한 뒤 신숭겸의 지략을 빠져나와 바로 이 곳에 구사일생으로 피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찰의 명칭도 은적사(隱跡寺)다. 그리고 임휴사와 안일사처럼 신라시대 영조스님이 창건주로 되어 있어 또 다른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또 한가지 공통점이라면 은적사를 포함해 세 사찰 모두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어린이포교에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는 점이다. 참으로 색다른 공통분모와 인연을 가진 사찰이라 하겠다.  * 은적사의 다양한 볼거리 *은적사는 색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먼저 은적사가 자리한 큰골에는 낙동강 승전기념관, 충혼탑, 케이블카, 수영장, 체육시설(4개소), 인공폭포(1개소), 원두막 등 가장 많은 위락시설이 몰려 있어 대구시민과 관광객이 앞산공원 중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또한, 2005년부터 처음 열린 미혼모를 위한 산사음악회라든지, 한문학당,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 대구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룸비니합창단 등은 은적사 만이 갖는 독특한 자랑거리다. 이 외에도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석가여래좌상이 고려 말 경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또한, 1880년대 조성한 지장탱화 역시 1880년대에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다. 이는 은적사가 현대사회에 빠르게 발맞추어 일선에서 포교와 교육에 매진하고 있음과 동시에 이와 같은 유구한 전통과 유산도 함께 보존해 나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니, 은적사가 전통사찰의 위상과 면모를 대변해주는 좋은 예를 제공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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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적사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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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적사 특징

이곳은 50대, 3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안일사, 소룡동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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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적사 여행 관련어

소룡동 군산시 소룡동 안일사 은적사석가여래삼존상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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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다른 지역

고원희가옥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옛 집터를 그 후손들이 여러차례 고쳐지은 집이다. 이 집은후손들이 여러 차례 고쳐 지은 집으로 현존 가옥은 1917년 건축한 것이다. 예전에는 더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현재는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 대문등이 남아있다. 대문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이다. 사랑채는 정면 네칸 측면 한칸으로 앞뒤로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두벌대 기단위에 덤병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의 방 3개와 한칸의 대청을 1단 높혀 누(樓)마루로 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여섯칸, 측면 한칸에 전후좌우에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외벌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앞열은 원형 그 외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원형 기둥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내부가구는 고주위에 대량을 걸치고 판대공을 놓았으며 구 위에 종도리를 놓았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반의 부엌, 두칸의 대청, 한칸의 방으로 되어 있다. 창호는 전체가 양쪽으로 열어지는 문이며, 방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넉살창이 있다. 숭정기원후오갑정사윤이월초구일(崇禎紀元後五甲丁巳閏二月初九日)이라는 상량문에 글씨가 쓰여 있는데 이것으로 건립연대가 1917년임을 알수 있다. 사당은 고경명장군과 그 아들 종후, 인후 형제의 부조묘이다. 이 사당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으로 앞에만 마루가 있으며 맞배지붕이다. 외별대의 낮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현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첨자형의 포로 결합하였고, 초익공 위에는 용두를 빼내고 장혀와 굴도리를 얹었다. 내부가구는 대량위에 동자주를 얹고 종보를 걸친 뒤 그 위에 다시 판대공을 놓았으며, 겹처마에 조잡한 모조 단청을 하고 있다. 건립연대는 안채보다 빠른 시기로 추측된다.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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