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의 인공지능이 분석한 의성 산운마을 여행의 다양한 정보와 주변의 숙소들을 알아보세요.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에 있는 전통 마을이다. 조선 명종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학동 이광준이 이곳에 입향을 하면서 영천이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산운이란 이름은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름으로 마을뒷편의 금성산 수정계곡아래 구름이 감도는것이 보여 '산운(山雲)마을'이라고 했다 한다. 금성산은 금성면과 가음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 531m의 높지 않은 산이나 백두산보다 더 오래된 화산 지형으로 중생대 백악기 (약7천만년전)에 분출한것으로 보여 진다. 화산 폭발에 의해 형성된 화산분화구가 꺼져 내려앉은 칼델라로 오랜세월 풍화와 침식 작용으로화산의 밑둥치만 타원형으로 남은 지형이 되었다. 금성산 정상의 평지는 천하제일의 명당지로 이곳에 조상묘를 쓰면 당대의 만석꾼이 되지만 주변 지역은 3년간 가뭄이 든다는 전설이 있어서 1970년대만 해도 인근에 가뭄이 들면 주민들이 누군가 묘를 쓰지 않았는지 확인하느라 일대를 파보고 확인 했다고 한다.산운 마을은 의성의 대표적 고택촌으로 일명 '대감 마을'로 불리우기도 한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살던 반촌의 모습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10여채의 전통 고택이 남아 있는데, 특히 마을 곳곳에는 회화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것을 볼 수 있다. 회화나무는 집안에 급제자가 생기거나 벼슬을 하게 되면 집 주위에 심었다 나무로, 그만큼 이 산운 마을에는 과거 급제자가 많았고 벼슬하는 양반들이 많이 살았었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마을에 들어서기 직전에 제일 먼저 학록 정사를 만날 수 있다. 1750년(영조 26년)에 영천이씨의 입향조인 학동 이광준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로 지방유형문화재 242호로 지정되어 있고,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인 팔작지붕과 문틀등이 당시의 원형대로 잘 보존 되어 있다. 금성산과 비봉산을 배경으로 한 평지 지형에 세워진 학록정사의 현판은 표암 강세황의 필적이라고 한다. 마을 어귀에는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374호로 지정되어 있는 운곡당이라는 고택이 서 있는데 영월부사였던 이희발이 세운집이라고 한다. 안채는 60여년전 고쳐 지은것으로 안채 앞쪽으로 작은 벽이 하나 있는데 외부인의 시선을 막기 위한 가벽이라고 한다. 운곡당과 같이 담이 맞붙어 있는 고택은 '정우당'이다. 죽파 이장섭이 지은 고택으로 1900년에 지어졌다. 운곡당에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소우당'을 만날 수 있다. 고풍스러운 주택으로 1880년대에 안채를 고쳐지은것 빼고는 지을때의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별당에 딸린 정원은 영남 제일의 정원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린 한국식 전통 정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인근에 경죽 8승중 하나인 빙계계곡이 있고, 빙계서원, 국보 제77호인 탑리오층석탑, 천연기념물 제 373호인 의성제오리공룡화석지, 문익점면작기념비 등이 있고, 탑리리의 경덕왕릉을 중심으로 260여기의 고분이 흩어져 있어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더보기이곳은 30대, 2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의성황토메기, 예천 가볼만한곳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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