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는 모든 여행자의 취향을
존중하는 여행 포털서비스입니다.
가격대와 평점 선택
1박 요금 (단위 : 원)
평점

이해룡고가 여행 정보

놀러의 인공지능이 분석한 이해룡고가 여행의 다양한 정보와 주변의 숙소들을 알아보세요.

이해룡고가 소개

이해룡고가
깨끗한 전통적인 한국적인

경기도의 제일 남쪽 끝인 차령산맥 줄기의 산간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후기 주택이다. 마을은 서운산의 남쪽 계곡에 계곡 물을 앞에 두고 약간 경사진 곳에 작은 규모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의 제일 뒷쪽 약간 높은 곳에 집이 놓여 있고 집 뒤로는 경사진 언덕이 시작된다.집은 'ㄱ'자형의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소위 튼 'ㅁ'자를 이루고 있으며 사랑채 앞으로 약간의 빈 터가 있고 집뒤 한 단 높은 대지에는 전에 후원을 꾸민 흔적이남아 있다. 안채 마루도리에 적힌 상량문에 가경(嘉慶)2년 즉 정조21(1797)년에 집을지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안채나 사랑채는 처음 지어진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안채는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 안방 2칸이 옆으로 이어지고 그 앞으로 부엌2칸이 이어져 소위 곱은자집을 이루며 대청 좌측에는 건너방 1칸이 있다. 건너방 앞의 툇마루는 대청보다 한 단 높게 꾸미고 그 아래로 방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를 내었다. 사랑채는 건너방과 이어져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ㅡ자형을 이룬다. 우측으로 2칸은 방이고 나머지 끝에 1칸이 마루가 되어 이 마루에서 뒤로 간채 건너방이 연결되며 앞에는 툇마루가 방과 마루를 이어준다. 방의 창문은 머름을 댄 띠살창으로 가공이 정교하다. 사랑채 우측으로 중문이 옆으로 이어지면서 행랑채가 되어 집의 앞쪽을 감싸도록 되어 있으나 행랑채 부분은 근래 벽돌조로 개조되었다. 집 뒤 언덕의 후원에는 자연석이 군데군데 놓이고 약간의 평지를 이루어 자연스런 맛을 남기고 있다. 2000년에 완전 멸실되었으나, 2006년 11월에 복원하였다.* 李海龍 (이해룡) 조선 중기 서예가. 자는 해수, 호는 북악(北嶽). 본관은 경주(慶州). 1588년(선조 21)사자관(寫字官)으로 통신사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많은 필적(筆蹟)을 남겼다. 임진왜란 때는 역관(譯官)으로 일본과의 화의교섭에 힘썼다. 95년 동지중추부사, 1602년 사섬시 주부(司贍寺主簿)에 이르렀고 경천군(慶川君)에 봉해졌다. 해서(楷書)에 뛰어났으며, 당시의 대가들로부터 한석봉(韓石峰)에 필적하는 명필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금석문으로 사현(沙峴)의 양호묘비(楊鎬墓碑)를 썼다.

더보기

이해룡고가 날씨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해룡고가 특징

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미리내, 안성쑥고개부대찌개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hook

이해룡고가 여행 관련어

안성맞춤랜드 음성 가볼만한곳 안성맛집 쑥고개부대찌개 안성사찰 안성 마실밥상 화성 가볼만한곳 수요미식회 서일농원 용인 가볼만한곳 안성 쿠우쿠우 미리내 안성쑥고개부대찌개 안성 서일농원 평택 가볼만한곳 안성 고기집 서울 근교 여행지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경기 안성의 추억을 가진 페이스북 친구

페이스북으로 연결하여, 친구와 여행을 떠나보세요

페이스북 인기 장소

이해룡고가 근처 숙소추천

이해룡고가 주변에는 총 0개의 숙소가 있습니다.

선택한 조건에 맞는 숙소가 없습니다.
사이트 상단 버튼을 눌러 다른 조건으로 검색해보세요.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다른 지역

국사암

국사봉 정상으로 향하면 국사암이라는 작은 절이 바위 틈새를 비집고 앉아 있다. 법당 오른쪽 옆으로 국사봉의 궁예미륵이라 불리는 세 개의 아담한 미륵이 있다. 그러나 이 미륵은 미륵이라기보다 석인상에 걸맞을 정도로 몸의 전체적인 비례에 비해 모자가 거대하고 손 모양도 수인이 아니라 선비들이 합장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목도 지나치게 짧으며 얼굴의 윤곽에는 불상이 주는 이미지나 친근미가 나타나 있지 않는다. 석불의 발목 이하는 땅에 매몰되어 있다. 지상에 노출된 본존의 높이는 320cm이고, 3단의 원형보개를 육계부분에 끼워 놓았다. 얼굴은 타원형으로 두 귀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으며,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에서 손가락을 안으로 모으고, 왼손은 배에 대고 손가락을 쫙 펴고 있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은 통견으로, 양팔에 도식적인 주름을 도시적으로 새기고 있다. 하반신에 U자형으로 주름에 있는 것으로 봐서 군의를 가슴 부위에서 묶은 것으로 보는데, 허벅지 위에 커다란 연화문을 새겨놓았다. 우협시와 좌협시 역시 둥근 보개를 쓰고, 본존과 동일한 표현자세를 하고 있는데 크기가 약간작고, 들고 있는 지물 육화장과 합이 다를 뿐이다. 불상의 후면에는 아무런 조각을 가하지 않았다. 이 석조삼존 입상은 조각수법이나 형태를 보아 조선후기나 근대에 미륵신앙의 유행과 더불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깨끗한 전통적인 한국적인
국사암 여행 정보 자세히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