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의 인공지능이 분석한 인흥마을 여행의 다양한 정보와 주변의 숙소들을 알아보세요.
남평문씨의 중시조로 알려진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이 대구에 입향한 것은 대체로 500년 전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 인흥에 자리를 잡은 것은 그의 18세손인 인산재(仁山齋) 문경호(文敬鎬, 1812~1874) 때이다. 그는 문씨만의 마을을 만들 것을 계획하고 원래 고려의 대찰(大刹)인 인흥사가 있었던 자리에 터를 잡아 오늘의 인흥마을을 새로 열었다고 한다.세거지에 최초로 건립한 건물은 1820년을 전후해서 지은 재실 용호재(龍湖齋)로 현재 광거당이 있는 곳이다. 저택이 들어선 것은 1800년대 후반으로 처음에는 초가로 시작했으나 그후 100년에 걸쳐 지금의 세거지가 형성되었다. 현재 70여채의 기와집이 한울 안에 정연히 들어서 있는 이마을은 건축연대가 200년 미만이지만 전통적인 영남지방 양반 가옥의 틀을 지키고 있으며, 세거지 구성과 주위 경관의 조화는 어느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마을이라 하겠다.
더보기이곳은 30대, 1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세거지, 본리리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인흥마을 주변에는 총 1개의 숙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