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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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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 소개

장안사
경치가좋은 활기찬 사진찍기좋은

* 천상의 정기 서린 곳에 비룡(飛龍)이 꿈틀거리는 곳, 장안사 *천년 신라에 학이 춤을 추듯 뭇 봉우리들이 힘차게 굽이치고, 구름을 담아 놓은 듯 비룡이 꿈틀거린다는 비룡산(飛龍山) 정상 가까이에 장안사가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금강산 장안사, 양산 장안사, 그리고 국토의 중간인 이곳 용궁면 용궁리 비룡산 장안사가 그 하나이다. 13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고찰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장안사(長安寺)는 허물어질대로 허물어진 쇠락한 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두타(頭咤) 스님이라는 분이 젊은 나이로 전국을 행각하던 중 이곳 장안사의 빼어난 산세를 보고 들어오셨다. 혼자 괭이로 산길을 내고 우마차로 들보를 옮기며 새롭게 가람을 중수하셨다. 기와를 머리에 이고 흙을 지고 나르는 스님의 모습에 마을주민들도 감복해서 스님을 도와 불사를 거들었다. 모두의 간절한 원력으로 마침내 장안사가 옛 모습을 보이고 다시 신도들이 찾아들자 두타(頭咤) 스님은 말없이 절을 떠나셨다. 오실 때의 모습 그대로 걸망 하나만 매고 조용히 떠난 스님은 출가 때 세운 서원을 이루기 위해 지금 태백산 어디선가 공부만 하고 계신다고 전한다.  * 장안사와 함께하면 좋은 여행지 *장안사와 더불어 장안사 뒷산에서 내려다보이는 회룡포는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유명한 자랑거리다. 장안사 뒷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장안사에서 세운 회룡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비경은 눈을 의심할 만큼 신비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팔각정 안에는 고려시대의 문관이며 재상이었던 이규보가 장안사에 머물면서 장안사에 대해 쓴 시가 걸려있다. 이규보는 이곳 장안사에 오래 머물면서 글을 지었으며 만년에는 불교에 귀의했다. 또한, 이 지역의 많은 인물들이 이 장안사 도량에서 원(願)을 성취하고 밖으로 역량을 발휘했다고 한다. 또한, 장안사 입구에 자리한 향석리 마을에 있는 석조여래좌상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47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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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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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 특징

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장안사 맛집, 기장 장안사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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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실공원

작은 섬에서의 휴식, 가오실공원가오실지는 국도 34호선 4차선변 가곡리 마을에 있는 연못이다. 이 연못에 1,000평 정도의 인공섬이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 안에 수령이 200여 년이 된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있다. 가오실(佳五室)이라는 이름에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공원은 여행지라기보다는 지나는 길에 잠시 들려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이다.  작은 연못 주위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고, 연못 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 우로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가오실지는 기능보다는 경승미를 갖춘 연못이다. 연못 안에 섬을 만드는 것은 신성사상에서 연유한다. 불로장생을 기원하던 데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가오실지의 풍경에 빠져보자연못 안에는 작은 섬을 만들어 놓았는데, 못이 오래되었듯 섬 안의 나무도 300년은 넘어 보이는 노거수이다. 버드나무도 있고 소나무도 있다. 물이 깊은데도 느티나무와 플라타너스는 용케도 잘살아 고목이 되었다.   못의 오른쪽에는 와룡담이 있고 오른쪽에는 용린암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으나 못가에 드러난 조그만 바위는 용귀라 하였다. 용이 누워 있고, 용의 목 비늘이 있으니 용머리 용귀가 있는 것이다. 수변공원 한쪽 옆에는 간단한 운동기구가 마련되어 있어 장기간 운전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고, 벤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특히 연꽃이 만발하는 7, 8월경에 이 길을 지나면 창 밖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스쳐 지나간다. * 면적 6225㎡(1,883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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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사

* 예천의 사악사(四岳寺) 중 하나, 동악사 *동악사는 예천군 예천읍 동본리 냉정산 아래 자리한 한국불교 태고종 사찰이다. 동악사는 예천 읍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한천(漢川)가에 있다. 예천 IC에서 읍내로 들어오는 길목인 동본교를 건너기 직전, 예천 온천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100m도 못 미쳐서 오른쪽 길가에 동악사라고 쓴 커다란 표지석을 보고 들어서면 바로 동악사 경내이다. 들어서자마자 눈에 보이는 것은 일반 가정집의 요사채와 그 앞 평상에 앉아있는 노보살, 그래서 처음엔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닌지 당황하게 되는데 조금 더 들어가 보광명전이라는 편액이 걸린 전각을 보고서야 안심하게 된다. 동악사는 서악사와 더불어 예천의 동서남북 사악(四岳)에 있던 절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예천 지역에는 지금도 주택가와 논과 밭 곳곳에 불교 유적지들이 남아있다.  예전엔 그 주변으로 크고 작은 절들이 있었으리라. 그때를 상상해보면 예천이 하나의 커다란 가람의 모습이었으리라는 즐거운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영화가 다 스러진 지금 동악사 부처님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사람들의 발걸음이 없어서인지 보광명전은 어둡고 쾨쾨하다. 산신각 오르는 길목엔 산신당이라는 안내판이 서글프다. 굳게 닫힌 보광명전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환한 햇살이라도 온몸에 받으실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절로 가는 마음이 늘 즐겁고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악사는 마음이 아픈 절이다.  * 동악사의 유래와 걸어온 길 *동악사는 671년(신라 문무왕 1) 의상 대사가 중국에서 귀국한 뒤 창건하였는데, 동악사 인근의 지형이 학(鶴)을 닮았다고 해서 처음에는 동학사(東鶴寺)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창건 이후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본래 동서남북 사악(四岳)에 있던 절 가운데 하나였으며, 사악 사찰 중 서악사와 함께 가장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곳이었고, 근세까지 법등이 이어져 왔다는 사실만 짐작된다. 그러나 그 밖의 문헌 기록은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근래에 와서는 1940년 무렵 옛터 위에 중창되었는데 현재에는 태고종 소속의 사찰로 노보살 두 분이 관리하고 있고 상주하는 스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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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봉사

* 숲과 계곡, 그리고 사찰의 아름다움, 명봉사 *소백산맥의 깊은 산기슭에 위치한 명봉사는 신라 헌강왕 원년(875) 두운대사가 창건하였다. 문화재로는 고려 태조 24년 세운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鏡淸禪院慈寂禪師凌雲塔碑-유형문화재 제3호)는 이두문으로 된 비석으로 국문학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최언위(崔彦僞)가 지은 것으로 판독됐다. 이 밖에 문종대왕태실비(유형문화재 제197호)도 있다. 대웅전 안에는 6.25 때에 유일하게 소실되지 않은 대세지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절 입구의 숲과 계곡이 빼어나며 경내에는 소나무, 전나무, 느티나무 등 큰 느티나무가 해를 가려 한여름에도 추위를 느끼게 한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흘러 여름철 피서지, 산책로로 각광받고 있다.  * 명봉사의 창건과 걸어온 길 *명봉사의 창건은 신라 말 875년(헌강왕 1) 두운(杜雲) 선사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하는 것이 없으며, 그 뒤 1662년(현종 3)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여러 스님들이 힘을 모아서 중건했다.  1668년에 다시 절이 전소되어 신익(信益)?행선(幸善) 스님 등이 시주를 얻어서 크게 중창하였다. 이후 1807년(순조 7)에도 한 차례 중수가 있었으나,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어 버렸다. 그 뒤 1955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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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 깊은 산세에 있는 조용한 사찰, 보문사 *경상북도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 학가산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예천 보문사는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단양, 봉화, 영주를 지나 경상도 내륙 깊숙이 위치해 큰맘을 내야 찾을 수 있는 도량이다. 예천IC를 나와 예천읍 방향으로 가다 삼거리에서 우회전, 지나온 고속도로를 마주보며 10분쯤 가다보면 ‘학가산 보문사’라는 팻말을 보게 된다.  이곳에서 2.5km쯤 논밭 사이로 난 콘크리트길을 따라가면 휘어진 소나무들과 잡목들로 잘 어우러진 산길 중간에 보문사가 있다. 중창주인 보조국사 지눌이 『화엄경』을 읽다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유명한 보문사는 부처님 말씀의 사섭법 중 하나인 동사섭(同事攝)을 실천하는 도량이다. 시골마을,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중턱에서 지역민과 함께, 지역민 속에서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절집이 특별한 곳이라기보다 이웃인 듯한 느낌이 나는 곳이다.  보문사 사적비에도 있듯 비록 웅장하고 위용을 갖춘 당우는 없지만 스스로 큰 욕망을 자제하고 작은 것을 자족하여 큰 것을 다스리는 지혜와 넉넉함이 있고, 멋을 부리는 기교와 세련된 조각은 없지만 앉고 누워서 정적삼매를 이루는 데 지장이 없는 당우와 요사가 신축되고 복원된 곳이다. 보문사는 대찰이라 위축됨도, 쇠락해 불편함도 없이 외갓집같이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 부처님을 뵐 수 있는 그런 절집이다.  * 보문사의 창건 배경 및 유래 *「학가산 보문사 사적비」에 창건, 설화, 연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타나 있다. 학가산은 태백산맥 줄기 가운데 아름답고 덕성을 갖춘 영산이다. 천하의 신령함이 이곳에 모이고 상서로운 기운이 널리 펼쳐져 있음을 신라 문무왕 16년인 서기676년 의상대사가 발견하였다. 이후 구름을 꾸짖고 숲을 헤쳐서 산을 열고 일승(一乘)의 원지(圓旨)를 받들어 정법의 깃발을 세워 삼승(三乘)을 회통(會通)하는 가람을 세우니 바로 이곳이 보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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