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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천사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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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천사 소개

적천사
엄숙한 조용한 개인적인

물 맑고 산세가 빼어난 청도의 주산인 남산(오산) 자락에 위치한 적천사는 원효 대사가 수도하기 위한 토굴로 세운 것이 창건의 시작이다. 옛부터 산세가 아늑한 명승지라 산내 곳곳에 암자와 암자터가 흩어져 있었다 한다. 삼국 중 가장 늦게 불교를 공인한 신라는(527년, 법흥왕 14) 왕실의 지원과 보호에 힘입어 크게 발전하게 되었고, 청도 지역에는 오갑사(대작갑사, 가슬갑사, 천문갑사, 소작갑사, 소보갑사)가 창건되는 567년(진흥왕 28)쯤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효 대사가 적천사를 창건한 664년(신라 문무왕 4)은 삼국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곳곳마다 전운이 감돌던 때로 태종 무열왕은 당의 세력을 업고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통일신라를 수립한 시기이다. 이러한 주변 정세 속의 통치 이념으로 작용한, 호국 불교 속의 적천사는 수많은 장정이 전쟁에 나아가 사상되자 이들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신앙의 장소로 그 역할을 담당하였고 특히 민중 불교를 주장한 원효 대사의 사상이 담긴 창건 배경이 자못 의의가 크다 하겠다. “숲 넘어 산에서 종소리 멀리 들려오니 푸른 봉우리에 절간이 있겠구나. 나무가 빽빽하여 문 두드리는 달빛 가리고, 골짜기가 비어서 문 두드리는 지팡이 소리에 대답하네. 물은 흰 짚을 깔아 놓은 듯 돌에 흐르고, 무지개는 푸른 담쟁이가 늙은 소나무위에 걸린 듯하다. 신령한 노인이 며칠 머무르더니 옛날 보조가 유적을 보였네.“ 인각 대사가 적천사를 읊은 시가 ‘무차루’에 편액으로 걸려 그 서정을 대변하고 있다. 보조 국사가 중창할 당시 집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은 것이 자라 지금은 거목이 된 은행나무는 말없이 800년 동안 절집의 일주문으로 오가는 이의 애환을 다 들어주고,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동서남북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은 덩치만 클 뿐 하나도 무섭지 않은 웃음까지 띤 해학적인 모습으로 오는 이를 맞아준다. 한때, 이곳에 계시다 운문사로 옮겨 가셨다는 오백나한이 계셨던 영산전, 관음보살이 연꽃 가지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연꽃 대좌 위에 서 있는 모습의 괘불과 오래된 돌의 중후함이 느껴지는 괘불대가 있고, 옛 백련암 자리 풀숲에 위치한 부도밭에는 종 모양의 고승의 부도 8기가 다정한 모습으로 모여 있다. 1946년 국토 통일을 기원하며 건립한 건국 기원탑이 조금은 낯선 모습으로 서 있다. 원효 대사가 창건한 이래 여러 스님들의 참선 수행도량으로 고승대덕을 배출하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거듭 중창되면서 사세를 이어온 적천사는 청도에 불교대학을 운영하고, 차와 대금이 함께하는 명상 수련회, 은행나무 별빛 축제, 어린이 사생 대회 등 지역주민의 중심에서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신행 포교의 나한 기도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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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천사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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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천사 특징

이곳은 40대, 3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청도 적천사, 사천왕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hook

적천사 여행 관련어

은행나무 청도 적천사 사천왕 괘불탱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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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사

경북 청도의 월은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제비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새들이 많은 곳이다. 풍각면 덕양리에서 대산사로 오르는 산길은 뱀의 모양과 흡사하다. 아마도 이러한 산의 형상 때문인지 제비알을 훔쳐가는 뱀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 뱀을 쫓기 위해 월은산에 소재한 대산사 경내에는 특이하게도 지대석을 멧돼지 형상으로 만든 돼지탑을 조성해 놓아 방문객의 눈길을 끈다. 이 탑은 1950년경에 조성해 놓은 것으로 어른 키보다는 조금 더 큰 석탑이다. 네모난 자연석 위에 이층기단과 2층탑의 형상으로 갖추고 있는데, 기단의 네모진 자연석 모서리에 멧돼지를 조각하였는데, 그 형상이 부릅 뜬 눈과 툭 튀어나온 주둥이가 매우 해학적이다. 화악산(華岳山)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월은산정에 자리잡고 있는 대산사는 옛날에는 용봉암 또는 용봉사라고도 하였다. 이 절은 신라 흥덕왕 5년(830)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오나 확실치는 않다.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목지국(目支國)에서 남해상에 표류해온 천수관음 불상 3구가 있었는데 이중 1구는 청도 운문사에 봉안하고 또 1구는 간 곳을 알 수 없으며, 나머지 1구를 대산사에 봉안하여 용봉사(龍鳳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법당이 소실되고, 천수관음불상은 왜적들의 도적질이 두려워 땅 속에 묻었는데, 그 사실을 안자가 고철로 팔려는 생각에 불상을 파내던 도중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임란 후에 불상을 파내어 법당에 다시 봉안하였는데, 고종 13년(1876) 왕후의 꿈에 부처님이 현몽하여 많은 시주를 하고 절을 중건하였다. 그후 다시 의문화상(義文和尙)이 중수하여 대산사라 개칭하였다. 이후 여러 번 수리하여 보존되었으나 1930년 일제강점기에 또다시 야습한 도적 때들의 방화로 법당은 사라지고 불상은 반소된 것을 봉안해오다 주변 땅에 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난 2000년 여름 사찰경내 밭에서 발견된 천수관음불상 수인에서 용봉사의 내력을 느낄 수 있다. 대산사로 가는 길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경치는 특히 아름다워 봄이면 산을 뒤덮는 꽃구경과 가을이면 단풍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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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사

청도읍 대남병원 앞에서 좌회전, 길을 따라 가다보면 청도천 교각 아래에서 길이 끊어지고 한참을 제자리에서 헤매게 된다. 분명 바로 여기쯤인데 하면서도 사방 어디에도 덕사 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덕사는 가는 길부터가 남다르다. 들어가는 입구 길이 물(잠수교) 속에 있기 때문에 처음 가는 사람은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가뭄이 들어 내(川)가 마르지 아니면 대부분 다리가 물에 잠겨있기 때문에 다리를 건너려면 마치 차를 몰고 용궁으로 가는 그런 기분이다. 산 하나가 섬 아닌 섬처럼 비가 많이 오면 그 잠수교마저 차량이 통제가 된다. 덕사가 머물고 있는 곳은 산 전체가 하나의 섬처럼 되어있으며 전국 어디에도 볼 수 없는 덕사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덕사가 언제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는 자세한 문헌이 없어 고증하기 어렵다고 한다. 절 이름이 덕사가 된 것은 절이 자리한 주구산과 관계가 깊다고 한다. 주구산의 형국이 마치 달리는 개 모양의 산처럼 생겼기 때문에 이러한 산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달아나는 개는 머물게 해야 좋다는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여기에 절을 세웠으며, 달아나지 않게 개가 좋아하는 떡을 준다는 의미에서 절 이름을 ‘떡절’이라 하고, 한자로 병사(餠寺)라고 하였다는 말이 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설은 덕사라는 절 이름에 맞추어 만들어낸 말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덕사처럼 두 자로 된 절 이름이 더러 있는데,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위와 같은 전설이 아닌 분명히 어떤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덕사는 이서국(伊西國) 때 신라와 격전을 치르다 297년(신라 유례왕 14) 이서국이 패한 패성지였다. 덕사를 찾으려고 근처 주민들에게 덕사가 어디냐고 물으면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며 모른다고 하는데, 떡절이 어디냐고 물으면 금방 알고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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