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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암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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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암 소개

죽림암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절을 찾기 전에 절이름을 들으면서 주위를 삥 둘러 대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는 풍경을 연상하게 된다. 사찰을 찾아가면서도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대나무를 찾기도 하고, 빼어난 주위의 풍광에 눈을 빼앗기곤 한다. 사찰을 찾아가는 즐거움은 도시에서 만날 수 없는 풍광과 만나고, 또 이처럼 가는 길이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사찰을 찾아가는 것은 마음 설레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죽림암 주위에는 사선대가 있다. 이곳은 옛날에 마이산과 운수산에 거주하던 네 명의 신선이 놀았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름조차 낭만적인 사선대가 있어서 그런지, 사찰을 찾아가는 동안 나그네 또한 신선이 되는 느낌이 든다. 죽림암 주위에는 그 이름에 걸맞게 대나무가 울창하다. 여름에 녹음이 짙어가면 싱그러운 댓잎 부딪치는 소리에 취할 것 같다. 추운 겨울에는 주위에 흰 눈이 소복한 데도 꼿꼿한 자세로 홀로 푸른 빛을 내뿜고 있다. 지조를 상징하는 나무답게 모진 비바람과 매서운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곧게 푸르게 서 있는 듯하다. 언제나 푸르른 대나무 숲을 닮은 죽림암. 계절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오묘한 모습을 찾아, 한번쯤 일상에서 벗어나 그곳으로 떠나가길 권한다. * 역사역사 절의 창건은 통일신라시대에 진감(眞鑑) 국사 혜소(慧昭, 774~850) 스님이 임실군 관촌면에 있는 신흥사와 더불어 창건했다고 전한다. 신흥사는 포교를 위한 도량으로, 죽림암은 수행을 위한 도량으로 청건한 것이라고 한다. 창건 후 고려시대의 연혁은 전하는 것이 없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1504년(연산군 10)에 벽송 지엄(碧松智嚴, 1464~1534) 스님이 중창했다. 그런데 법당에 걸려 있는 '죽림암 연혁' 현판에 보면 절은 이 때 벽송 지엄 스님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창건 연대가 다른 거승 1504년 지엄 스님의 중창을 실질적 창건으로 보아서 그렇게 기록했는지 모르겠다. 그 뒤 절은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렸으나 1604년(선조 37)에 진묵 일옥(1562~1633) 스님이 중창했고, 1868년(고종 5)에 허주 덕진 스님이 다시 중창했다고 한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1908년 이후로 권법상(權法相) · 정법민(鄭法敏) · 오일탁(吳一鐸) · 박금규(朴金奎) · 신동호(申東浩) · 최흥춘(崔興春) · 성암 길남(惺庵吉男) 스님 등이 주지로 있었음이'죽림암 현판'에 나와 있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1981년에 성암 길남 스님이 법당 칠성각 산신각 수각 등을 중수했고, 그 뒤 1984년부터 재정(在淨) 스님에 의해 칠성각 · 산신각 · 요사 등이 중건되었다. 절 이름이 죽림암인 것은 옛날 절 주위에 왕대가 많아서였는데, 왕대가 칡덩쿨로 인해 자라지 못하자 스님이 대를 보호하고 칡덩쿨을 없애기 위해 불을 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작은 대나무만 남았을 뿐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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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암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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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암 특징

이곳은 30대, 2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임실치즈, 전북 임실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hook

죽림암 여행 관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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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대관광지&조각공원

사선대 관광지는 1985년 12월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사시사철 관광객이 모여든다. 섬진강 상류인 오원천변에 있는 관촌 사선대는 물이 맑고 경치가 아름다워 마이산의 두 신선과 임실면 운수산의 두 신선이 관촌 강변에 모여 놀았다는 전설이 깃든 명승지이다. 사선대 주변은 기암절벽과 수풀, 맑은 물이 어우러져 승경을 연출하며, 사선대 위쪽의 울창한 숲속에는 운서정(지방유형문화재 135호) 이라는 정자가 있어 정취를 돋운다. 1928년 김승희라는 사람이 부친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고 하며 일제 때 각지의 우국지사들이 모여 망국의 한을 달래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던 곳이라고 한다. 또 뛰어난 조각가들이 인근 오궁리 미술촌에서 직접 제작한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사선대 조각공원에서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다. * 총 면 적 : 330,012㎡(관광지166,000㎡, 조각공원51,400㎡, 공원지역112,612㎡) [사선대전설] 지금으로부터 2천여년 전 마이산의 두 신선과 운수산의 두 신선이 관촌 오원강 기슭에 모여 놀다가 병풍처럼 아름다운 주위의 풍경에 취하여 대에 오르기도 하고 바위 위를 거닐기도 하면서 즐겼다. 어느 날 까마귀 떼가 날아와 함께 어울려 놀고 있을 때 홀연히 네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네 신선을 호위하여 사라졌다. 그 후로 그 곳을 선남선녀들이 놀았다하여 사선대(四仙臺)라하고 까마귀가 놀던 강이라 하여 오원강(烏院江)이라 불렸다. 또 일설에 의하면 정조 때 관촌면 주천리의 상산 이씨 이달효(李達孝)는 아호를 호산(湖山)이라하고, 문장이 뛰어나 호산집일책(浩山集一冊)을 퍼내기도 하였다. 그는 호남의 명사들과 널리 사귀었고 임실현감 이도재와도 막연한 사이었다. 이때 이도재 현감은 전주 판관과 남원부사 호산 이달효 등과 같이 넷이서 항상 오원강 위에 배를 띄워 놀았다. 이들 네 분들은 서로 나이가 비슷한 노년기에 이곳에 모일 때에는 언제나 관복을 벗고 평복을 하였으므로 마치 네 사람의 신선과도 같아 어느덧 그들이 놀던 곳를 사선대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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