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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문화재단지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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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문화재단지 소개

청풍문화재단지
유명하지않은 힐링하기좋은 즐거운

청풍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문물이 번성했던 곳으로 많은 문화 유적을 갖고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후산리, 황석리,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마을이 문화재와 함께 수몰될 위기에 있었다. 충청북도청에서는 1983년부터 3년간 수몰 지역의 문화재를 원형대로 현재 위치에 이전, 복원해 단지를 조성했다.단지에는 향교, 관아, 민가, 석물군 등 43점의 문화재를 옮겨 놓았는데 민가 4채 안에는 생활 유품 1,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고려 때 관아의 연회 장소로 건축된 청풍 한벽루(보물 528)와 청풍 석조여래입상(보물 546) 등 보물 2점과 청풍부를 드나들던 관문인 팔영루(충북유형문화재 35), 조선시대 청풍부 아문인 금남루(충북유형문화재 20), 응청각(충북유형문화재 90), 청풍향교(충북유형문화재 64) 등 건축물 및 옛 도호부 시대의 부사나 군수의 송덕비, 선정비, 열녀문, 공덕비 등이 세워져 있다.한벽루에서 충주호가 한눈에 보이며 주변에 비봉산, 구담봉, 옥순봉, 능강구곡, 금수산, 단양팔경, 월악산국립공원, 수안보온천 등의 관광지가 있다.* 청풍문화재단지의 다양한 문화재와 볼거리 ** 제천 청풍 한벽루 (보물 제 528호)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4년 (1317)에 청풍현이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다.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다. 이 루는 석축토단의 자연석 주초석 위에 기둥이 배가 부른 엔타시스 수법을 쓴 층 아래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계 양식이다. 누의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 익랑 (대문간에 붙여 지은 방)을 달았다.* 제천 청풍 응청각이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본래 한벽루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명종 초 이황 (1501~1570)이 단양군수로 있을때 '응청각'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인조15년(1637)에 충청감사 정세규의 일기에 응청각에서 유숙한 기록이 있다. 고종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중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토석축의 담으로 벽을 막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건물 좌측에 목조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제천 청풍 금병헌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4호)이곳은 청풍부의 청사로 쓰였던 동헌건물이다. 청풍은 삼국시대에 사열이현이었으나, 신라 경덕왕때 청풍현이라 하였다. 고려 충숙왕 때 지군사가 되고, 조선 세조 때 군이 되었다. 현종 초에 도호부로 되었으며, 고종32년에 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국역의 통폐합에 따라 청풍면이 되었다. 이 건물은 숙종7년(1681)에 부사 오도일이 처음 지었다. 그후 숙종 31년(1705)에 부사 이희조가 중건하고, 영조2년(1726)에 부사 박필문이 중수하고,권돈인이 편액을 써서 걸었다. 고종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전면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 6칸, 측면3칸의 팔작집이다. 일명 명월정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청풍관'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금남루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이곳은 청풍부의 아문으로 '도호부절제아문'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순조25년(1825)에 청풍부사 조길원이 처음 세우고 현판도 걸었다. 고종7년(1870)에 부사 이직현이, 동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각각 중수하고 1956년에도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조성으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각집으로 팔각의 높은 돌기둥 위에 세운 2층의 다락집이다.* 자연학습원꽃밭 - 구절초, 한라구절초, 해국, 쑥부쟁이, 빗자루국화꽃길 - 조팝나무길, 백철쭉길, 산철쭉길, 영산홍길, 진달래길* 제천 후산리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이 집은 본래 청풍면 후산리 105번지에 있었던 민가였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조선말기에 지어진 ㄱ자형의 팔작 기와집이다.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하여 동남을 향하고 있다. 대청의 우측에 2칸 크기의 건너방과, 툇마루를 높이 하고 그 밑에 함실 아궁이를 두고 있다. 대청은 좌측으로 웃방이 있고 웃방에서 동쪽으로 꺾어 대청의 좌측으로 후퇴를 후보하여 제사방으로 꾸미고있다. 전체적인 내부의 배치가 특이하다.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제천 도화리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이 집은 본래 청풍면 도화리에 있었던 민가였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조선 말기에 지어진 ㄷ자형의 우진각 기와집이다. 중앙에는 3칸 크기의 대청을 이루고, 좌측 간살은 방, 부엌, 광으로, 우측 간살은 방2칸과 2칸 크기의 부엌으로 되어 있다. 둥근 통나무 굴뚝과 부엌 살자창옆의 관솔을 피워 어둠을 밝히는 시설은 태백산맥 일대의 산간지대 민가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것이다. 본래 이전하기전의 흔적으로 보아 앞쪽에는 바깥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튼 ㅁ자형의 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청풍 황석리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이 집은 본래 청풍면 황석리 164번지에 있었던 민가이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 지금의 자리로옮겨 복원한것이다. 집의 구조는 안채와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겹머리 기와집이며, 조산말기의 건축물로 좌측(서쪽)으로부터 부엌, 안방, 웃방을 나란히하고 끝에 사랑방을 두었다. 아방과 웃방 앞에는 길게 툇마루를 두고, 사랑방 퇴는 부엌으로 구성하였다. 툇마루와 사랑부엌 사이의 퇴주(각주) 이름이 특이하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가집이다. 특히, 청풍문화재단지가 위치한 물태리에서 제천까지 약 10km 구간은 충주댐 건설로 인한 청풍호반 조성시 아름다운 금수산 5부 능선상으로 만들어진 구불구불한 도로로, 이 길을 달리면 한편에 는 금수산의 기암괴석이 보이고, 아래로는 청풍호반의 물이 드리워져 있어 주변 경관이 빼어난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이다. 또한, 이거리는 청풍호 조성 후에 식재된 벚나무 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해 벚꽃길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 중순, 청풍문화재단지와 청풍호주변에서 청풍호반 벚꽃축제가 개최된다. 청풍 호반벚꽃 축제 행사는 전야제로 연등행사와 용신제를 올리며, 본행사로는 식전, 식후행사로 구분하여 민속경기와 체육경기가 읍.면.동대항전으로 실시하여 시민의 화합의 장이 되며, 부대행사로는 벚꽃 사진 촬영대회가 있으며 향토음식 시식코너를 개설하여 이 지방의 별미를 맛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된다.* 연리지와 연리목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라고 한다. 두몸이 한몸이 된다하여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흔히 비유하였다. 알기쉽게 '사랑나무' 라고도 부른다. 나무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이다. 연리목은 가끔 볼 수 있으나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희귀하다. 가지는 다른 나무와 맞 닿을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맞닿더라도 바람에 흔들려버려 좀처럼 붙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 전설상의 새와 나무인 비익조와 연리목에서 유래된 비익이라는 새는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이기 때문에 항상 나란히 한몸이 되어서 난다하며, 연리라는 나무는 두 그루의 나무이지만 가지가 서로연결되어 나무결이 상통한다는데서 남녀간의 깊은 정분을 뜻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당나라 6대 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비련을 그린 장한가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비익조)가되고 땅에서는 연리지(연리지)가 되도다>라고 읊었다.*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546호)이 불상은 높이가 341cm이고,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10세기 경)의 작품으로 보인다. 불상의 얼굴 모양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상으로 두툼한 양볼에 인중(코와 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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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문화재단지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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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문화재단지 특징

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제천여행코스, 제천 청풍랜드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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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강계곡 얼음골

* 여름에 얼음이 어는 곳, 능강계곡,얼음골 *제천시에서 청풍면으로 향하면 넓고 시원한 청풍호반을 만나게 된다. 청풍문화재단지에 이르기 전인 청풍호반의 청풍대교를 건너지 않고 좌회전하여 청풍호를 오른편에 끼고 산중턱의 포장도로를 10여분쯤 달리면 ES리조트(콘도)를 만나고 이곳을 지나 정방사라고 알리는 이정표식과 함께 왼쪽으로 금수산에서 발원하는 능강계곡을 만나게 된다.  능강계곡의 발원지는 수산면과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에 서 있는 금수산(1,016m)의 서북사면 8부쯤으로 이곳에는 삼복염천에만 얼음이 나는 빙혈이 있다.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맑은 물이 굽이치고 깎아 세운 것 같은 절벽과 바닥까지 비치는 맑은 담(潭), 쏟아지는 폭포수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이곳은 지대가 높고 남북을 가로막아 종일 햇볕이 드는 시간이 짧아 겨울철에 바위가 차가워지고 물이 얼어 삼복지경에도 얼음이 나는 곳이라 하여 얼음골 또는 한양지라 한다. 초복에 얼음이 제일 많고, 중복에는 바위틈에 있으며, 말복에는 바위를 들어내고 캐내어야 하며 이곳의 얼음을 먹으면 만병통치라하여 많은 피서객이 모여든다. 이곳 한양지에서 발원하여 능강계곡을 흐르는 물길은 청솔로 우거진 숲 사이로 차고 맑은 계류가 굽이쳐 돌아 흐르면서 계곡의 양쪽에 병풍을 두른 듯한 곳이 있는가 하면 꿈속을 노니는 것 같은 곳도 있다. 이십리 물길을 흘러 청풍호로 흘러든다. 계곡의 왼쪽 능선에는 신라 문무왕 의상대사가 창건한 정방사가 있어 산사아래 청풍호를 내려다볼 수 있다.  * 얼음골의 특이한 기상현상의 이유는? *얼음골과 같은 곳의 특이한 기상현상은 기상관광의 대상이 되는데, 지질학상 이러한 지형을 애추(崖錐,talus 혹은 scree)라고 한다. 단애면으로부터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풍화 산물이 단애 밑에 쌓여 만들어진 지형을 애추라고 한다. 얼음골에서 냉기가 나오는 곳은 이 애추 사면인데 주로 주빙하 기후 하에서 풍화작용에 의해 발달한 화석지형으로서, 구성물질이 모난 바위덩어리로 되어 있다. 여름철에 이 애추사면에 산사태가 발생하여 도로의 교통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결빙현상이 계절과 정반대인 것은, 암석 속에 틈이 많이 생겨서 일어나는 것이다.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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