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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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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소개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깨끗한 전통적인 한국적인

한산도의 이충무공 유적지는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제승당 일원의 525,123㎡(159,128평)에 조성된 지상건물, 각종 비석, 동산문화재 광장, 조경물 등과 풍치림야를 통칭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충무공은 좌수영 함대를 이끌고 그해(1592) 5월 4일 1차 출동하여 옥포, 합포, 적진포해전에서 대승하고 5월 29일의 2차 출동에서 적의 주력함대를 궤멸시킨다. 이어 7월 4일 제3차 출동에서 세계해전사에 찬연히 빛나는 한산대승첩(7월 8일)을 이룩하게 되는 것이다. 한산대첩으로 조선수군은 제해권을 완전 장악하여 왜군의 소위 [수륙병진작전]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이어 8월 24일의 제4차 출동에서는 부산포에 집결해 있는 일본함대 100여 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둔다. 이에 선조는 1593년 8월에 이충무공에게 당시 편제에도 없던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하고 경상, 전라, 충청 삼도의 수군을 통괄 지휘케 하는데 이 무렵 이충무공은 한산도에 진영을 옮기고 장기전에 대비한다. 한산도 두억개에 터를 고르고 진영을 설치하기를 정유년(1597) 2월 26일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되기까지 3년 7개월 동안하였는데 운주당을 비롯한 각종 공해, 창고와 부대시설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어떻게 건립되었는지는 문헌상 명확한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다. 현재 난중일기오 시조 및 한시 등이 전하는데 그중에서도 이 한산도에서 어느날 밤, 달을 보며 읊었던 "한산섬 달밝은 밤에"는 유명하다. <<한산섬 달밝은 밤에>> 한산(閑山)섬 달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茄)는 남의 애를 끓나니. 정유재란으로 한산진영이 불타버리고 폐허가 된지 142년만인 영조15년 (1739)조경 제107대 통제사가 이 곳에 유허비를 세우고 운주당 옛터에 예대로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친필현판을 걸었다. 그후 영조 30년(1760) 이충무공의 후손 이태상제121대 통제사가 낡은 건물을 중수하면서 유허비를 손질하고 비각을 뒤로 옮겨 세웠다. 그로부터 117년 뒤인 고종 14년(1877) 공의 10세손 이규석 제198대 통제사가 제승당유허비를 새로 다듬어 세우고 옛비는 그 옆에 묻어 두었는데 최근에 다시 발굴하여 2기를 함께 보존하고 있다. 건양원년(1896) 통제영이 혁파되고 뒤이어 주권을 일제에 빼앗기게 되자 지방유림에서 제승당을 관리하였으나 재원조달이 어려워 점점 퇴락하여 가고 있었다. 이에 통영군민들은 제승당의 퇴락을 두고 볼 수 없다하여 1932년 3월 15일 [한산도제승당중건기성회]를 창립하고 모금운동을 벌이는 한편, 한산도민들은 따로 [모충계]를 결성하여 [충무영당] 건립과 충무공영정 봉안을 추진하여 1933년 6월 2일 [한산도제승당 준공식]과 [충무공영정 봉안식]을 동시 거행하기에 이르렀다. 40여년 후 1976년 국가예산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정화사업을 벌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곳 유적지에는 충무사, 제승당, 수루, 한산정 등 당우를 비롯하여 유허비 2기, 한글유허비 1기, 통제사송덕비 7기, 비각 5동과 5개문(내삼문, 외삼문, 홍살문, 충무문, 대첩문), 기타 부속건물이 있다. * 한산도 지명 해설 개미목 - 왜적의 패잔병이 바다로 도주하기 위하여 개미허리처럼 산을 파헤쳤던 곳 (의항) 너추리 - 군함들을 짓던 곳 (여차리) 대섬 - 화살대를 공급하던 곳 (죽도) 돛단여 - 군함을 가장하여 의병전술을 쓰던 곳 (수륙터앞여) 두억개 - 왜적의 머리가 수없이 베인 곳 (의항개)망산 - 바다에 적의 동정을 살피던 곳 (망곡) 매외치 - 왜적의 시체를 매장한 곳 (의항) 멜개 - 군수품 하치장이 있던 곳 (하포) 죽전 - 화살을 만들기 위한 대를 키우 곳 (죽전) 문어개 - 왜적이 도망칠 길을 묻던 곳 (문어포) 야소 - 군기창이 있던 곳 (야소) 염개 - 소금을 굽던 곳 (대고포개) 옷바위 - 병사들의 군복을 빨래하여 널었던 곳 (의암) 제승당 - 임란 당시의 해군통제부 (제승당) 진두 - 진을 친 요새였다는 곳 (면소재지) 진터 - 골뭍에 올라 전투를 훈련하던 곳 (의항) 창동 - 군량 창고가 있던 곳 (창동) 해갑도 - 이충무공께서 갑옷을 벗으셨던 곳 (관암앞) 용초 - 쇠를 만들고 채굴했던 곳 (용초) 숯덩이골 - 숯 기타 연료를 조달했던 곳 (장곡) 독안바위 - 질그릇을 만들던 곳 (장곡) 못개 - 식수를 마련했던 곳 (하포 뒷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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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특징

이곳은 30대, 2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통영 통굴가 물회, 통영 호텔 추천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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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공원

통영이라는 이름은 수군통제사가 머문 통제영이 있던 자리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 경상, 충청 3도를 통괄하기 위해서 수군통제사라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충무공이순신이 부임했다. 그는 전남 여수에 있던 통제영을 통영시 앞바다에 떠 있는 한산섬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일대를 통영이라 부르게 됐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통제영이 옛 충무시로 옮기면서 옛 충무시 일대까지 통영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한산섬의 제승당이나 통영시의 세병관 같은 유적지는 이 일대가 통영임을 증명해준다. 1995년 1월 시·군 통폐합 때 통영군은 충무시와 합쳐져서 통영시로 확정되었다. 미륵산이 최고의 일출정경을 자랑하는 곳이라면 달아공원은 국내 최고의 일몰을 자랑하는 곳이다. 통영시 남쪽의 미륵도 해안을 일주하는 23km의 산양일주도로 중간에 있다. '달아'라는 이름은 이곳 지형이 코끼리 어금니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는데 지금은 '달구경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통영 시민들은 보통 '달애'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륵도 최남단 해안가에 자리잡은 달아공원은  산양해안일주도로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바다 경치를 즐기다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으로 이곳에 서면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한산, 욕지, 사량 등 3개 도서면 관내의 대다수 섬들을 조망할 수 있으며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전경은 가히 일품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달아공원에는 관해정이라는 정자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정자 양편으로는 동백나무가 줄지어 자란다. 달아마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일 뿐 더러 한려수도의 장관도 감상하고 낙조나 달이 뜬 밤의 은파를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정자로 지난 1997년에 세워졌다. 또 동쪽으로는 멀리 거제도가, 서쪽으로는 남해도가 보인다. 달아공원 전망대에 올라서면 대·소장재도, 저도, 송도, 학림도, 곤리도, 연대도, 만지도, 오곡도, 추도, 욕지열도와 이름 없는 수많은 작은 바위섬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다도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공원 내에는 섬 안내 대형지도가 한쪽에 설치되어 있으므로 실제 풍경과 대조하면 섬의 대부분은 알아볼 수 있다.
경치가좋은 힐링하기좋은 즐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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