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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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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소개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쾌적한 활기찬 경치가좋은

* 아름다운 포구와 우리나라 최초 성경 전래지가 있는 마을,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전래지이자 서해안 유일의 해돋이와 해짐이를 볼 수 있는 마량포구는 주변에 마량리 동백나무 숲과 해양박물관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해돋이 축제에는 10만 이상의 인파가 몰려드는 서해안의 정동진이다. 또한 마량포구의 해짐이는 서해 어느 곳에서 본 해짐이보다 아름다우며 화려하다. 마량포구는 매년 해돋이 해짐이 축제, 자연상 광어축제 등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축제 기간에도 20만 이상의 인파가 이곳을 찾아들고 있다.* 한국 성경 전래와 그 의의 *1. 영국 함선의 마량진(馬梁鎭) 도래와 기독교적·문화적 의의영국 함선의 마량진 도래와 성경 전수 : 순조(純祖)실록 권 19 [국사편찬위원회 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제 48권], 순조 16(丙子, 1816년)년 7월 19일 병인(丙寅)조에는 충청수사(忠淸水使) 이재홍(李載弘)이 충청도 마량진 갈곶 밑에 이양선 2척이 표류해 온 일을, 다음과 같이 장계로서 보고하고 있다. 1816년 9월 4일과 5일(음 7월18일과 19일), 영국의 함선Alceste호(함장 Murry Maxwell)와 Lyra호(함장 Basil Hall)가 비인현 마량진 앞 갈곶에 도착했다. 이 배는 이 해 영국 정부가 중국파견하는 사신 암허스트(J.win.Am-herst)를 태우고 중국에 도착, 이들 일행을 광동에 내려놓고 대기하는 동안 본국 훈련에 따라 조선의 서해안일대를 탐험하면서 해도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이들 두척의 배가 마량진에 도착했을 때 마량진 첨사 조대복(趙大福)과 비인현감 이승렬(李升烈)이 문정(問情)차 두 배에 승선, 검사하고 몇 건의책과 문서를 받았는데 그 받은 책이 가운데 한 권이 성경이었다. 부연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9월 4일에는 노대관 한 사람[조대복]이 몇몇 종자를 거느리고 리라호와 알세스트호를 차례로 문정하였고, 그 이튿날에는 새벽부터 어제의 그 노대관[조대복]과 친구 [이승렬]이 문정했는데 이날 그들은 선실에서 서가에 가득한 책들과 지구의 천구의 등을 보면서 신기한 태도를 보였다. 이승렬은 아담하게 정리된 서가를 보면서 그 중 책한권을 뽑아 갖기를 원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영백과사전 전질 중의 한 권이어서 주지 못하고 그 대신 다른책 한 권을 주었으며, 이승렬은 그 답례품으로 부채를 건네주었다. 해도 작성을 끝낸 이들이 출항하려 할때 첨사 조대복은 며칠 더 기다리면 조정의 답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리라호가 이미 출발했기 때문에 알세스트의 함장 맥스웰은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쉬워하는 첨사에게 맥스웰은 책 한권을 선물로 남기고 떠났는데, 그것이 성경이었다. 조대복은 아무런 선물도 받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성경]을 주려 했을 때 거절했다. 그러나 선실을 떠날 때 맥스웰이 다시 권했더니 사양하지 않고 감사한 표정으로 받았다고 한다. 첨사에게 성경을 준 장면에 관해 영국측 기록에는 “그는 어떠한 선물도 받으려 하지 않았지마는 우리의 친절에 무척 기뻐하고 어느 정도 속이 풀렸다. 우리가 성경을 그에게 주었더니 감사한 모양으로 받아 가지고 퍽 우정적인 작별을 고하였다. (한국최초성경유입기념사업회 발기인대회, <성경유입참고문헌>참고)”고 했다. 그러나 충청수사 이재홍의 장계는 그 표정이 다르다. 두 기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조선측 자료는 충청수사 이재홍 이 두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 책 세 권에 약간의 문서가 있었다고 한듯하다. 그러나 영국측 자료는 한 권의 성경을 당시 조대복에게준 것으로 밝히고 있다. 당시 영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조선측이 자기들이 받은 것이 성경인 것을 알지 못했지만 영국측 기록에 의해 이 때 받은 것이 성경임을 알게 되었다.2. 마량진 성경전수의 역사적인 위치1816년 9월 마량진에 일시 정박한 영국함선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을 전해주고 갔다. 그 성경의 전수가 한국사 및 한국기독교사에서 갖고 있는 역사적인 위치는 어떤 것일까? 이 점은 한국에 기독교의 전래와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마량진 사건 이전에 한국에 성경이 전래되었을 가능성과 실제로 남겨진 기록의 유무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량진사건 이전에 성경이 한국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한다는 것을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성경이 소개되었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연구나 기록의 발견으로 봐서, 마량진 사건은 기록으로 확인된, 한국 최초의 성경전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최초의 이 성경 전수 사건은 그 뒤에 복음전파의 열매를 맺는 과정으로 연결되어 갔는가 하는 점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최초의 성경전수’에 값하는 영예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며, 다만 단회적인 역사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3. 성경 전수와 한국 기독교의 출발19세기에 들어서서 몇 차례에 걸쳐 유럽 계통의 개신교 선교사가 한국을 찾았다. 1832년 충남 홍주만의 원산도를 찾은 독일인 칼 귀츨라프 목사와, 1865년과 그 이듬해에 한국에 왔다가 죽임을 당한 영국인 토마스 목사가 그 좋은 예다. 귀츨라프는 1831년 이듬해 충남 홍성군 고대도에 상륙하여 조선 조정에 교육을 청하였다가 거절당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한역성경을 민들에게 나뉘주며 기독교를 전파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감자 심는법과 포도 재배법을 가르쳐 주고,  주기도문을 언문 번역하고 약 1개월만에 마카오로 돌아갔는데 이 때의 항해경험을《Journal of three voyages along the coast of China in 1831, 1832 and 1833》으로 남겼다. 그가 한역성경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는 이미 모리슨이 와서 성경을 한문으로 번역 출판했었기 때문이다. 토마스 목사는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천주교박해 정책이 추진되고 있을 때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 이 땅에서 피를 흘린 영국 선교사다. 그는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중국 상해로 왔으나 그의 아내 케럴라인의 죽음과 상해주재선교책임자 무어헤드와의 불화로 런던 선교회를 사임, 잠시 해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뒤 스코틀란드 성서공회 윌리암슨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1885년 9월 13일 한국에 와서 2개월 반 동안 중국 성경을 나뉘주고 복음을 전했으며 그 이듬해 1866년 8월 16일에는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에 승선, 향도 자격으로 평양에 들어왔으나 9월2일 27세의 나이로 대동강가에서 피를 흘렸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 그가 가져온 한문성경을 한국인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가 한국에 왔을 때엔 중국에서는 이미 모리슨 역 성경과 문리 역 성경 등 몇종류의 번역성경이 있었다. 그가 죽음에 앞서 남긴 성경이 그 뒤 선교사의 도래 후에 그 자손들에 의해 선교사 마펫과의 접촉을 가능하게 했다는 전언이 있다.한국의 개신교사가 시작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1885년 4월 5일 부활 주일에 한국에 입국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등 복음선교사들에 의해서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 복음 선교사가 도래하기 전에 성경이 한국어로 먼저 번영되고 번영된 성경이 용감한 한국인 선배 신자들에 의해 한반도 안으로 전래되어 개종의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는것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역사는 먼저 만주 지역을 통해 일어났다. 만주지역과 관련해서는 스코틀랜드 연합 장로교회 소속의 선교사였던 로스 목사와 매킨타이어 목사를 잊을 수 없다. 그 중 로스는 처음부터 만주의 우장·영구로 들어왔고 그 뒤에 봉천으로 옮겨 선교활동을 펴면서 한국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갖고자 동만주의 한만국경지대를 순례하기도 했다. 뒤에 매킨타이어와 합류한 그는 1870년대 중반에 만주에 왔던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등 한국인 청년들을 만나 한국어를 교습받은 한편 한글성경 번역에 동참시켰다. 이어서 1879년에는 네 사람의 의주청년이 세례를 받게 되었으며, 그 뒤 1882년에는 성경번역과 출판에 참여한 김청송과 서상륜도 로스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8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성경번역 사업은 1882년 3월에는 누가복음서가, 5월에는 요한복음서가, 그 이듬해에는 사도행전이 각기 출판되었다.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최초의 성경이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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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40대, 5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대천 가볼만한곳, 서천수산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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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희리산해송자연휴양림

* 해송천연림의 경관을 볼 수 있는 곳, 희리산해송자연휴양림 *1998년 개장한 해송천연림으로 산전체가 해송천연림으로 경관이 수려하다. 또한 입구에 저수지가 위치하여 산림휴양이 가능하다.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올라가면 서해바다를 관망할 수 있고 춘장대해수욕장, 금강하구둑 및 한산 모시타운 등이 근거리에 위치하여 주변관광지와 연계이용이 가능하다. 휴양림에는 산림의 공익기능, 미래의 임업 등을 설명하는 전시관과 진입로를 따라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지역의 야생화 등을 심어 전시하는 야생화관찰원, 표고와 영지버섯을 재배하는 버섯재배원, 무궁화를 품종별로 전시한 무궁화전시포 등 교육시설이 있고, 참나무, 낙엽송, 삼나무, 해송, 층층나무, 잣나무, 소나무 등의 판재로 만든 숲속의 집이 있다. 또한 성인 50명~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숲속수련장도 운영 중이다. 체육시설로는 족구장, 농구장이 있다.*희리산의 다양한 볼거리 *희리산은 해발 329m로 최고봉은 문수봉이며 휴양림 북서쪽에는 네 장사가 놀던 자리인 사인대가 있다. 사인대 밑에 140m의 절벽이 있는데 장사가 턱걸이한 장소가 있어 턱걸이장이라도 불리운다. 문수봉 밑에는 빈대가 하도 많아 절을 헐었다는 문수사 절터가 현재도 있다.문수봉 남쪽으로 500m 전방에 전사들이 말을 타고 달리던 장소가 능선 따라 있고 동남쪽 500m 전방에 말이 똥을 싼 것같은 말똥바위의 형태가 있다. 특히 문수봉 밑으로 네 장사가 거처하던 큰 산봉우리 4개가 있고, 그 밑으로는 졸병들이 거처하던 작은 바위 100여 개가 있어 졸병바위라고 부르는 등 바위의 생김새가 여러 가지 형태의 모양을 이루고 있어 희리산에서 문수봉에 이르는 등산로 주변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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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하구둑 관광지

* 금강이 바다로 나아가며 품을 넓히는 곳, 금강하구둑 관광지 *충남 서천군 마서면 당선리에 위치한 금강하구둑 관광지는 해마다 금강하구둑을 찾아오는 철새들을 볼 수 있는 명소다. 금강하구둑은 장엄하게 흐르는 금강이 바다를 만나 품을 넓히는 곳에 만들어진 대규모 수리시설로,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을 잇는 교량 역할도 하고 있다. 드넓은 갈대밭과 농경지를 품고 있는 금강 하구에는 가창오리, 청둥오리를 비롯해 검은머리물떼새 등 희귀 조류와 수만 마리 철새들이 날아와 장관을 이룬다. 이른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풍경도 좋고, 해질 무렵 낙조와 함께 바라보는 풍광도 일품이다. 철새가 찾지 않는 계절이라도 금강 하구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풍경을 감상하려는 여행자들이 끊이지 않는다.사계절썰매장과 바이킹, 회전목마 등 놀이시설이 있는 드림랜드와 게임월드, 자동차극장으로 이루어진 금강하구둑 관광지는 식당과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잘 갖추어 금강하구둑을 돌아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좋다. 특히, 뒤편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가면 금강 하구와 건너편 군산이 한눈에 들어와 일대를 조망하기에 그만이다. 금강하구둑 관광지 앞 강변 산책로에는 아기자기한 카페들과 김인전공원이 있어 데이트를 즐기려는 연인들에게 인기 있다. 나란히 이어지는 자전거길을 따라 하이킹을 즐기는 여행자도 많다. 금강 하구를 따라 조성된 긴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햇살에 반짝이는 강변 풍경을 감상하고 조금 더 걸어 조류생태전시관까지 함께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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