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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산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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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산 소개

한우산
경치가좋은 사진찍기좋은 즐거운

* 깊은 산세와 계곡이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내는 산, 한우산 *한우산(764m)은 자굴산으로부터 이어지는 맥이다.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어 곳곳에 기암괴석이 연출하는 절승이 즐비하며, 가운데 계곡이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다. 이 계곡은 여름에도 찬비가 내린다 하여 찰비계곡이라고도 부르며 한우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계곡의 길이가 3km에 이른다. 곳곳에 전설이 서려 있는 농소와 각시소 등이 운치를 더하는 가운데 봄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에는 싱그러운 숲이 울창함을 더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 겨울이면 계곡 따라 즐비한 바위틈새에서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려 겨울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또한 영화 이광모 감독, 안성기·송옥숙 주연의 "아름다운 시절"에서 한우산을 내려오는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다. 영화에서처럼 안성기·송옥숙 일가의 몰락하는 가정사가 이 산자락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우마차를 끌고 산자락을 굽이굽이 내려오는 인생의 역경을 상징화한 마지막 장면이 이곳 풍경을 빌린 것이다.봄철에는 철쭉이 군락으로 피어나 산 전체가 벌겋게 물들어 가족 단위의 등산객들이 1일 등반코스로 즐기며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 상공에서 연출하는 오색의 패러글라이더도 장관이다.   * 한우산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계곡, 벽계(찰비)계곡 *찰비계곡은 사시사철 맑은 물이 구비치고 흘러서 폭포를 만들어 일대장관을 이루는 천하의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흐르는 폭포수는 곳곳에 소를 만들어 놓았는데 각시소와 농소, 아소 등이 유명하고 여기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폭포수와 웅덩이의 물이 너무 맑아 주위에 아름다운 숲들이 물에 비쳐서 선경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여름철과 가을철에 많은 관광객이 찰비계곡을 찾고 있다. 지금은 계곡아래쪽에 있는 벽계관광지와 벽계저수지 등으로 인해 종합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어 야영객과 낚시꾼 등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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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산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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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산 특징

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한우산 은하수, 의령 가볼만한곳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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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대

* 사시사철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산, 봉황대(의령) *의령읍에서 약 23km 떨어진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의 벽계저수지 초입에 있는 단애(斷崖)이다. 거대한 기암괴석이 일대장관을 연출하는 봉황대는 모양이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봉황대 돌계단을 따라서 오르면 암벽 사이로 자연동굴이 하나 있고, 이 동굴을 지나면 좁은 석문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 석문을 간신히 빠져 나서면 또 다시 동굴을 하나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는 사시사철 넘쳐흐르는 약수터가 있어 봉황대를 찾는 이들에게 시원한 약수를 제공한다. 봄철에는 기화요초가 만발한 경관이 일품이며, 여름철에는 녹음이 우거진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그러나 봉황대의 진면목은 가을의 단풍이다. 만산홍엽에 뒤덮인 봉황대에 비치는 저녁노을은 가히 선경을 보여준다. 주변에도 경관이 빼어난 곳이 많다. 찰비계곡 내 무운바위, 용소, 각시소, 개기바위가 있으며, 촌닭백숙, 염소 불고기 등의 별미도 맛볼 수 있다. 가족단위로 관광과 휴양하기 좋아서 주말이면 인근 도시민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 봉황대의 또다른 볼거리, 봉황루와 일붕사 *봉황대 중턱에는 약간의 평지에 누대 하나를 마련해 두었는데 이것은 봉황루이다. 봉황루는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인 누정(樓亭)이다. 봉황대의 볼거리 중 또다른 하나는 봉황대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는 대한불교일붕선교종 사찰 일붕사이다. 이 사찰의 대웅전은 동양 최대의 동굴법당이라고 알려져 있다. 동굴법당의 규모는 넓이 456m², 높이 8m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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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산천렵마을

* 전형적인 농촌마을에서의 체험과 볼거리가 있는 곳, 산천렵마을 *의령읍에서 동북간으로 약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천렵마을. 이 마을은 주위로 농경지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으며 마을 앞에는 깨끗한 개울이 흐르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의 전원풍경을 느낄 수 있는 마을이다. 옛날 합천의 궁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궁시(궁소)’의 이름에서와 같이 신라 경순왕의 세왕자가 봉황대와 왕다실에 피난 와서 살았다 하여 삼궁소라 이름 하였다. 이것을 본 떠 궁소라 했다한다. ‘궁시 아랫땀’으로 불려지다가 행정구역의 정비로 1914년 이후 의령군 궁류면에 속해지면서 ‘어질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 하여 ‘예동’이라 하였다. 최초 임진왜란을 피해 문화 류씨, 동래 정씨, 김령 김씨가 정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대부분이 문화 류씨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산천렵마을의 즐길 거리 중 하나로 먹거리를 뺄 수 없다. 마을에서는 신토불이쌀밥, 추어탕, 망개떡, 제피식혜, 취나물, 고사리, 다래순 등 다양한 먹을 거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체험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마을의 볼거리 *마을 인근에는 기네스북에도 이름이 있는 세계최대의 동굴법당인 일봉사와 봉황이 놀던 자리인 봉황루가 있다. 또한 골이 깊고 수목이 울창하여 시원한 기운이 겨울의 찬비와 같다하여 이름 붙여진 찰비계곡이 있어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마을입구에 있는 새청당(새칭이숲)도 볼거리 중 하나. 새청당은 마을입구에 소나무와 기목 등이 숲으로 우거진 둔덕을 말하며 마을 첫 입구의 정자나무는 당산나무로 동신제를 올리던 곳인데 외적을 막고 악귀를 쫓아내는 곳이라 이름난 곳이다. 그리고 폐교를 활용하여 만든 곳으로 5개 분야 상설전시관과 운동장의 돌탑, 장승, 솟대 등이 잘 어우러져 있는 의령예술촌도 방문하면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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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붕사

* 기네스북에 등재된 동굴법당이 있는 곳, 일붕사 *일붕사는 천혜의 자연 요건을 갖춘 봉황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이 사찰이 유명한 것은 동굴법당. 이 법당은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이 법당의 크기는 456.2m²(138평)과 297.5m²(90평). 현재 불자들의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 도량으로 하루 평균 2백여 명의 불자들이 오고 있다. 일붕사는 사찰대지 16,529m²(5천평), 임야 99,174m²(3만여평), 신도수 2천여세대, 석굴 대웅전 456.2m²(138평), 석굴무량수전 297.5m²(90평), 제1요사, 제2요사, 조사전, 약사전, 북극전, 나한전, 산신각, 종각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 일붕사 창건유래와 걸어온 길 *서기 727년 신라의 혜초스님이 창건한 성덕암이 현재 일붕사의 전신이다. 일붕사는 약 1330년 전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때 최고의 격전지였다. 당시 왕군이 봉황대 영역 안에 이 지역의 수많은 영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태종 무열왕의 삼왕자가 계셨던 궁소 봉황대의 사찰에서 비로자나불을 안치시켜 호국 일념으로 성덕왕의 덕을 기렸고 성덕대왕이 봉황대의 산세가 빼어남과 선당의 얼이 베인 곳을 천추만대에 기념하자는 뜻에서 자신의 왕호를 내려 성덕사라는 귀족적 사찰을 지었으니 과히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덕사도 이조 성종25년 국령으로 불사 33개소를 회합함으로서 그 영향을 받아 승려를 학대하고 사찰을 파괴함으로서 봉황대 성덕사는 어쩔 수 없이 사찰을 궁류면 운계리 팔사곡 자사산으로 옮겨 정수암으로 그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그 후 (148년전)에 장사곡 출신의 어떤 인물이 들어와 승을 축출하고 암자를 파괴할 때 쇠망치로 수없이 내려쳐도 미륵불상 한불이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 것을 보고 주승이 범상치 않은 일이라며 그 불상을 업고 합천군 연호사로 도망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연호사 불상 중 일부분이 성덕사 불상이라고 전해온다.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암자로 있다가 1934년 8월 26일 당시의 면장이 산주와 더불어 봉황대의 덕경을 도우기 위하여 벚꽃나무를 심고 관세음보살상과 여래불상을 모셨으나 소실되어 다시 이야용 스님이 법당을 짓고 성덕사라 하였다. 그러나 1984년 10월 24일 누전으로 인하여 또다시 성덕사법당이 완전 소실되었으나 1986년 7월 26일 사단법인일붕선종회 (지금의 재단법인 일붕선교종) 창종주 일붕 서경보 종정 큰스님이 혜운 주지스님을 부임케하여 이 산 이름이 봉황산이라 산의 기가 너무 세어 사찰이 부지 못하니 기를 줄이기 위해 굴을 파야 한다고 하시므로 주지스님이 불사를 이룩, 사찰명을 일붕사로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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