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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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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 소개

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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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벽을 깎아 새긴 통일시라 마애불, 방어산 마애불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산131번지 내 위치한 방어산마애불 삼존상(三尊像)은 암면을 깎아 새긴 마애약사불상(磨崖藥士佛像)과 그 협시보살상(脇侍菩薩像)인데, 신라 애장왕 2년(801)에 만들어진 신라 하대의 가장 저명한 마애불이다.이 불상은 8세기의 이상적 사실주의 경향의 불상들과는 다소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거구의 불상이지만 위장부적(偉丈夫的)인 당당한 체구가 아닌 현실적인 장대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특징은 정적(靜的)이며 침울하기까지 한 얼굴, 탄력감이 줄어진 신체 각부, 그저 둥글기만 한 어깨, 밋밋한 가슴과 배 등에서도 보이고 있는 것이다.물론 일광보살(日光菩薩)의 강렬한 인상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의 온화하고 우아한 얼굴 등에서 이상적인 양식이 다소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8세기의 긴장감과 활력이 넘치던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에서 한층 해이되고 한층 활력이 줄어진 현실적 사실주의 양식으로 이행되어 가던 변모과정을 잘 보여주는 801년의 절대연대를 가진 중요한 마애불상으로서 1962년 1월 21일 보물 제159호로 지정되었다.* 방어산 마애불의 형태 *마애불은 본존(本尊) 전체높이 5m, 본존상 현재 높이 2.85m, 좌협시상(左脇侍像) 높이 2.45m, 우협시상(右脇侍像) 높이 2.64m이다. 재료는 청석(靑石)이다. 마애불은 암벽에 새긴 불상을 말하는 것으로, 한국을 비롯하여 인도·중국·일본 등에서 볼 수 있으며 수법도 양각(陽刻:浮彫)·음각·선각(線刻) 등 다양하다. 원래부터 바위를 매끈하게 다듬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은 석질(石質)이 더욱 고르지 못하고 아랫부분은 탈락이 심하다.[문화재 정보]지정종목 : 보물 지정번호 : 보물 제159호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시대 : 통일신라종류 : 불상크기 : 본존 전체높이 5m, 본존상 현재 높이 2.85m, 좌협시상 높이 2.45m, 우협시상 높이 2.6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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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함안 강주마을, 금오산 짚라인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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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동유적지

* 고려의 충절을 지킨 이오 선생의 고려인 마을, 고려동유적지 *고려동유적지는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이오 선생은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 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을 하였다. 이오는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았다. 또 아들에게도 새 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이며,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위패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자손들은 19대 60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살았다. 뿐만 아니라 벼슬보다는 자녀의 훈육에 전념하여 학덕과 절의로 이름 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다.   * 고려동 유적지의 볼거리 *현재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고려전답, 자미단(紫薇壇), 고려전답 99,000㎡, 자미정(紫薇亭), 율간정(栗澗亭), 복정(鰒亭) 등이 있다. 후손들이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벼슬길에 나아가기보다는 자녀의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학덕과 절의로 이름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이곳을 1983년 8월 2일 기념물 제56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문화재 정보]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경남기념물 제56호  지정연도 : 1983년 8월 2일  소장 : 이홍섭  시대 : 조선  종류 : 유적지  크기 : 면적 8,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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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정

* 조선시대 풍류를 즐기던 곳, 무진정 *무진정은 풍류를 즐기기 위해 언덕 위에 지어진 정자이다. 이 정자는 조선 명종 22년(1567)에 무진(無盡) 조삼(趙參)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세우고, 선생의 호를 따서 무진정(無盡亭)이라고 하였다. 무진은 조선 성종 14년(1483)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의 목사를 지냈고,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겸 춘추관(春秋館) 편수관(編修官)을 지냈다.   * 무진정의 형태와 구조 *앞면 3칸·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의 가운데 칸에는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9년 4월에 중건한 것으로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이 단순 소박하게 꾸민 팔작지붕의 건물로 조선 초기의 정자형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앞뒤의 퇴를 길게 빼고 중앙의 한 칸을 온돌방으로 꾸며놓았다.   [문화재 정보]지정종목 : 시도유형문화재  지정번호 : 경남유형문화재 제158호  지정연도 : 1976년 12월 20일  시대 : 조선시대종류 : 누(정)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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