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는 모든 여행자의 취향을
존중하는 여행 포털서비스입니다.
가격대와 평점 선택
1박 요금 (단위 : 원)
평점

함안무기연당 여행 정보

놀러의 인공지능이 분석한 함안무기연당 여행의 다양한 정보와 주변의 숙소들을 알아보세요.

함안무기연당 소개

함안무기연당
안전한 전통적인 한국적인

* 조선 후기의 연못, 함안 무기연당 *무기연당은 주재성의 생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이다. 주재성은 조선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함께 난을 진압한 인물이다. 관군들은 돌아가는 길에 그의 덕을 칭송하여 마을 입구에 '창의사적비(倡義事蹟碑)'를 세우고 서당 앞 넓은 마당에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고 산의 모양을 본떠 놓았다. 이후 주재성은 연못의 이름을 '국담(菊潭)'이라 하고 호를 삼았으며, 연못가의 서당에서 학문에 전념하며 유유자적하였다. 연못의 서북쪽에는 오래된 정침한 채가 남아 있으나, 많은 부분을 고쳐서 그 가치를 잃고 말았다. 연못가에는 후대에 풍욕루(風浴樓)와하환정(何換亭)을 지었고, 최근에 충효사(忠孝祠)를 지었다. 연못 주위에는 담장을 쌓고 일각문을 내어 영귀문(詠歸門)이라 하였다. 비교적 원래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으로, 정원문화(庭園文化) 연구에 좋은 자료이기도 한 이곳은 1984년 12월 24일 중요민속자료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 무기연당의 구조와 형태 *연당은 직사각형으로 그 한가운데 당주(當洲)가 있는데 봉래산(蓬萊山)을 연상시키는 가산(假山)이다. 주위에는 호안(護岸)을 쌓고 북쪽에 하환정(何換亭)·풍욕루(風浴樓)를 지었다. 하환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이고 연당 쪽으로 난간을 설치하였다. 마루는 고설(高設說)하지 않고 그저 사기(四起)한 정도이다. 홑처마의 기와로 된 팔작지붕이다. 풍욕루는 댓돌을 높이 쌓고 앞뒤퇴가 있는 3칸 규모이며 역시 홑처마의 기와로 된 팔작지붕이다. 이들은 1984년에 정화 보수하였다.연당 서쪽에는 영귀문(詠歸門)이라는 일각문이 있고 서쪽에는 1745년에 건립된 충효사(忠孝祠)가 자리잡고 있다. 연당 주위의 담 서쪽은 1700년대에 지어진 함안 무기리 주씨고가(경남민속자료 10)로서 감은재(感恩齋)·영정각(影幀閣) 등이 있다. 감은재는 국담의 장남인 주도복(周道復)의 서실로서 국담문집책판(菊潭文集冊板:경남유형문화재 242)이 보관되어 있고, 그 대청 북쪽벽이 영정을 모셨던 영정각이다.   [문화재 정보]지정번호 : 중요민속자료 제208호  지정연도 : 1984년 12월 24일  소장 : 주환채  시대 : 조선시대  분류 : 호소  

더보기

함안무기연당 날씨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함안무기연당 특징

이곳은 30대, 5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함안 강주마을, 금오산 짚라인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hook

함안무기연당 여행 관련어

함안 맛집 함안냉면맛집 함안 계곡 창원 가볼만한곳 함안 백종원 창녕 가볼만한곳 함안 금오산 짚라인 함안 뚝방길 함안연꽃테마파크 군북맛집 함안 강주마을 함안 식당 함안 절 함안 해바라기축제날짜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경남 함안의 추억을 가진 페이스북 친구

페이스북으로 연결하여, 친구와 여행을 떠나보세요

페이스북 인기 장소

함안무기연당 근처 숙소추천

함안무기연당 주변에는 총 0개의 숙소가 있습니다.

선택한 조건에 맞는 숙소가 없습니다.
사이트 상단 버튼을 눌러 다른 조건으로 검색해보세요.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다른 지역

고려동유적지

* 고려의 충절을 지킨 이오 선생의 고려인 마을, 고려동유적지 *고려동유적지는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이오 선생은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 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을 하였다. 이오는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았다. 또 아들에게도 새 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이며,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위패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자손들은 19대 60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살았다. 뿐만 아니라 벼슬보다는 자녀의 훈육에 전념하여 학덕과 절의로 이름 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다.   * 고려동 유적지의 볼거리 *현재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고려전답, 자미단(紫薇壇), 고려전답 99,000㎡, 자미정(紫薇亭), 율간정(栗澗亭), 복정(鰒亭) 등이 있다. 후손들이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벼슬길에 나아가기보다는 자녀의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학덕과 절의로 이름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이곳을 1983년 8월 2일 기념물 제56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문화재 정보]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경남기념물 제56호  지정연도 : 1983년 8월 2일  소장 : 이홍섭  시대 : 조선  종류 : 유적지  크기 : 면적 8,842㎡  
안전한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려동유적지 여행 정보 자세히보기

무진정

* 조선시대 풍류를 즐기던 곳, 무진정 *무진정은 풍류를 즐기기 위해 언덕 위에 지어진 정자이다. 이 정자는 조선 명종 22년(1567)에 무진(無盡) 조삼(趙參)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세우고, 선생의 호를 따서 무진정(無盡亭)이라고 하였다. 무진은 조선 성종 14년(1483)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의 목사를 지냈고,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겸 춘추관(春秋館) 편수관(編修官)을 지냈다.   * 무진정의 형태와 구조 *앞면 3칸·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의 가운데 칸에는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9년 4월에 중건한 것으로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이 단순 소박하게 꾸민 팔작지붕의 건물로 조선 초기의 정자형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앞뒤의 퇴를 길게 빼고 중앙의 한 칸을 온돌방으로 꾸며놓았다.   [문화재 정보]지정종목 : 시도유형문화재  지정번호 : 경남유형문화재 제158호  지정연도 : 1976년 12월 20일  시대 : 조선시대종류 : 누(정)각  
안전한 전통적인 한국적인
무진정 여행 정보 자세히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