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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민속박물관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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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민속박물관 소개

태영민속박물관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현대적 감각을 살린 밝은 전시장에는 삼국시대의 토기부터 조선시대 및 근대의 옹기가 전시되어 있다. 토기는 백제시대 토기와 신라ㆍ가야시대 토기를 중심으로 통일신라시대토기 및 고려시대 토기가 전시되어 있으며, 옹기는 조선시대의 것부터 근대, 최근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관람자는 전시를 통해 토기에서 옹기까지 우리의 오래된 살림살이의 한 면을 통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옛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전통 초가, 우리 들꽃과 어우러진 넓은 야외전시장에서는 옹기의 기원과 발전, 옹기의 특성, 생활 속의 옹기들을 새롭게 설치된 설명 패널과 함께 종류별로 살펴볼 수 있다. 시즌별 특별전은 물론 소장 유물을 상시 교체하여 가까이에서 우리 옛것들의 구수함과 친숙함을 느껴볼 수 있고 정감있는 휴식공간으로도 활용되는 ‘다시 찾고 싶은 박물관’이다. 태영박물관에서는 각종 전통음식과 민속놀이를 개인, 단체 혹은 가족 단위로 체험해 볼 수 있다. 전통음식체험은 절기별 음식과 발효음식, 별식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어 있다. 설과 추석에 먹는 떡국과 송편은 물론 이제는 잊혀져 가고 있는 동짓날팥죽과 유두에 만들어 먹는 밀전병 및 봄날 우리 들판을 화사하게 수놓는 들꽃을 이용한 화전놀이 등이 준비되어 있다. 우리 음식의 기본이 되는 발효음식은 대표적인 것으로 장과 김치 담그기가 마련되어 있으며 이 밖에 다식과 전통음료 만들기, 그리고 다례(茶禮)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민속놀이체험으로는 제기, 연, 콩 주머니 등을 만들 수 있고, 투호, 비석치기, 자치기, 아기사방 등의 놀이를 할 수 있다. 또한, 여치집, 짚풀각시, 짚뱀, 새끼줄, 소부리망, 달걀꾸러미 등과 같은 짚풀 생활용품과 솟대 등의 민속소품 등도 만들어 볼 수 있다. 특히, 초가는 새롭게 개관한 전시관이며 우리 초가를 재현한 곳으로, 전시공간이면서 보는 전시가 아닌 체험전시공간이기도 하다. 재현된 옛 부엌에서는 제공되는 부식을 이용하여 체험자가 직접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에 밥을 지어먹을 수 있으며, 전기불 없이 촛불아래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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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민속박물관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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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민속박물관 특징

이곳은 30대, 2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목소리테마파크, 공주 가볼만한곳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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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명선생비

임진왜란 때 금산에 주둔한 왜적을 유인하여 금성면 파초리 눈벌싸움에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제봉 고경명 선생의 순절비이다. 전라도 출신의 의병장인 고경명의 순절비가 여기에 세워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본래 고경명선생은 고향인 장흥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더욱이 임금인 선조가 파천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격분함을 참지 못한 선생은, 큰 아들 종후와 여주인 김천일, 담양부학유 유팽노 등을 찾아 상의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그 후 금산의 왜적을 향하여 적정을 수색하는 한편, 충청 의병장 조헌에게 서신을 보내서 같이 평강을 건너 금산의 왜적을 칠 것을 약속하였다.이 때 진산에 이르자, 왜병이 전주로 진군하려고 진산에 오는것을 맞아 접전 끝에 왜적을 물리쳤다. 이에 왜군은 서서히 후퇴하여 금산성으로 돌아가 수세를 취하였다. 임진년 7월 9일 새벽에 작전계획을 세우고 곽영의 군은 북문을 담당하여 공격하고 고경명 군은 서문을 담당하여 공격하였다. 북문에서 승리한 왜군이 후방에서 고경명 군을 공격하니, 앞뒤로 적을 대항해 싸우게 된 고경명군은 후방의 왜군을 쫓아 눈벌에서 왜군에 포위당하고, 전군이 순절하였다. 고경명 군의 거병 보고를 들은 선조는 공조 참의라는 관직을 하사하고 초토사라는 겸관을 전지하였으며, 순절한 소식을 듣고 애통하게 생각하여 사우를 광주에 세워 액호를 포충사라 하고 배향케한 다음 금산의 종용사에도 배향케하여 그 충의를 기억하도록 했다. 조선 17대 효종 27년에 당시 군수 여필관이 순절비를 세운 것을 일제 때 없애 버렸으나, 해방 후 후손들이 다시 세우고 1964년 비각을 건립했다.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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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장군 이치대첩비

이치는 순우리말 '배티재'의 한자 이름이다. 이 배티재는 대둔산 중허리를 넘어 전북 완주군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전략상 중요한 곳이었다. 임진년 7월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왜군이 군량미의 현지 보급을 위해 이 배티재를 넘어 호남평야로 진출하려 하였다. 이때 왜장 고바야가와가는 2만 병력을 이끌고 재를 넘으려 했다. 한편, 이보다 앞서 권율장군은 동복현감 황진과 1,50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 재를 지켜 왜군의 호남진출을 막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군은 수의 우세함과 승승장구의 힘을 믿고 단숨에 이 재를 넘으려고 공격했지만, 장군은 전병력을 독려, 결사전을 벌여서 적을 섬멸하여 승리를 거두니, 이를 일컬어 이치대첩이라 하고, 이후 왜군의 호남 진출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1866년 금성면(錦城面) 상가리(上佳里)에 이치대첩비와 대첩사 (大捷祠)를 세웠으나 1944년 6월 일제가 항일유적 말살정책으로 폭파하여 그 파편이 진산면 사무소에 보관되었다. 1963년 대첩에 참여한 후손과 지역 유지가 지금의 장소에 비석을 건립하였다. 1991년부터 성역화계획이 수립되어 사당·비각 및 안내판 이축, 내삼문·외삼문·담장을 건립하였다. 장군의 묘소(경기기념물 제2호)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長興面) 석현리(石峴里)에 있다.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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