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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제13호 (1997. 9. 18 지정)기능보유자 : 김용운 (남, 상감입사) 천미사는 대구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13호 상감입사장 (김용운)이며 금속공예품을 취곱하고 있다. 상감입사란 조금의 기법으로 쇠나 구리 등의 금속표면에 홈을 파고, 금선이나 은선을 끼워 넣어서 장식하는 전통적인 상감기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입사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4세기경부터 철제 무기류나 청동제 그릇의 표면에 금이나 은으로 입사장식을 한 공예품들이 많이 발견된다. 입사기법이 가장 발달했던 시기는 고려시대로서 청동향로와 같은 뛰어난 불교공예품에 입사기법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전통적인 고려시대의 입사기법은 계속 이어졌는데, 조선중기 이후에는 청동뿐만 아니라 철재에 은입사를 해서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만들었다.입사에는 크게 두 가지 기법이 있는데 하나는 고려시대부터 전해지는 전통적인 청동은입사 기법으로 바탕금속(청동)의 표면에 정으로 홈을 파고 그 안에 은선을 박아 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중기 이후부터 전래된 철입사로 바탕 금속(철)의 표면에 정을 사용하여 가로 세로로 쪼아 거스러미를 일으킨 후 그 위에 얇은 금, 은판이나 선을 놓고 망치로 쳐서 금속에 붙이는 것으로 일본에서 소위 포목상감이라 부른다. 이 두 가지 기법 중에서 상감입사는 조각장이 하는 경우가 많았고, 입사장은 대부분 철입사를 담당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부터 상감입사와 얇은 금속판이 입사 재료로 병용되었고, 고려시대에는 상감입사기법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달되었다. 상감입사는 많은 시간과 고도의 기법을 요하므로 귀족층의 기물에 쓰였고, 조선중기 이후부터는 쉽게 문양을 나타낼 수 있는 입사를 개발하여 일반에도 보급된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시대까지 공조와 상의원에 속하였던 입사장, 조각장등에 의하여 전승되던 입사, 상감입사 등의 공예기법은 이왕가 미술제작소의 장인들에 의하여 전승되었고, 김용운은 이 전통적 기법을 전승한 상감입사장이라 생각되며 기능보유자인 김용운의 상감입사 공예품은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발전해온 동체와 뚜껑의 모양이나 크기가 같은 합구형식의 원반합과 같은 모양을 추구하여 인주함, 연초함, 향합, 합 등을 제작하였다. 또한 사용된 재료 역시 동의 바탕에 전·연성이 좋은 은을 구리와 합금하여 선이나 면으로 정을 사용해서 홈을 파내고 은실을 박아 넣는 기법은 고려시대, 조선시대 상감입사 공예품과 같다. 입사기법은 세공이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공구가 사용되지 않으며 여러 종류의 정과 망치가 주로 사용되고, 여성 장식용 금은상감입사 노리개 작품에서도 형태는 부드러운 나비, 달과 같은 곡선과 직선을 가미시켜 금재료 바탕에 백금선으로 소나무, 학, 구름, 물결 등의 십장생문을 사용해서 형태의 분위기는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많은 공모전에 출품하여 1981년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 대통령상 수상을 비롯하여, 대구 공예품 경진 대회에서 4회의 금상 등 수십 차례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1981년 기능 올림픽, 대구산업디자인전람회, 대구관광공예품 경진대회 등에서 심사장, 심사위원도 역임하였다.
더보기이곳은 2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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