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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정무공 오정방 고택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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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정무공 오정방 고택 소개

안성 정무공 오정방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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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옥 민가는 안채와 사랑채를 붙여서 한채로 건립한 것으로 형태는 곱은자형에 1고주 5량집이다. 사랑채 뒤에는 2칸 사당이 있고, 본래의 사랑채는 없어졌다고 한다. 건립연대는 약 2백년전까지로 올라갈 수 있으나 그 동안 수차례에 걸쳐 전면적인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안채만이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본래 이 집은 중종 5년(1510)에 처음 세운 이후 정무공 오정방(1588~1634) 천파고오상에서 충정공 오두인(1624~1689)에 이르기까지 해주 오씨 명인들을 배출한 유서깊은 곳으로 전해내려온다. 특히 충정공은 이 집에서 성장하여 나라에 크게 공훈을 떨친 바 있어 우암 송시열이 편액을 써서 보내오기도 했다고 한다. 당초에는 덕봉리 252번지에 세워졌던 것이나 효종 1년(1650)에 현 위치로 이전해 왔다고하며 건물은 1935년에 중수한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대지 740.49m²(224평)에 사당 18.57m²(5.62평), 안채 102.87m²(31.12평), 사랑 102.87m²(6.52평) 규모의 3동이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치목수법, 건물의 배치 및 구성 수법이 우수하여 조선 중·후기의 주택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 연대 - 조선시대 후기 * 규격 - 안채 102.9㎡, 사당 18.56㎡, 행랑 21.65㎡ * 재질 - 목재 * 오정방1) 생몰년 - 1552(명종 7)∼1625(인조 3) 2) 본관 - 해주(海州) 오(吳) 3) 자호 - 영언(英彦), 퇴전당(退全堂) 4) 시호 - 정무(貞武) 5) 시대 - 조선 중기 6) 성격 - 무신 1552(명종 7)∼1625(인조 3).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영언(英彦), 호는 퇴전당(退全堂)이다. 호군(護軍)을 지낸 오수천(吳壽千)의 아들이며 수군 우후(水軍虞候)를 지낸 숙부 오수억(吳壽億)에게 입양되었다.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안성 출신이다. 선조 16년(1583) 무과에 장원급제하자 이이(李珥)로부터 영재라는 칭찬을 받았다. 당시 북쪽에서 이탕개(泥湯介)가 종성지방을 자주 침범하자 대사마(大司馬) 이일(李鎰)의 휘하에 들어가 종군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로 영흥지방에서 의병 수천명과 힘을 합쳐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이어 부령 부사·정평 부사를 지냈다. 그 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겸(兼) 부총관(副摠管)·포도대장(捕盜大將) · 군기시 제조(軍器寺提調) · 서북 순변사(西北巡邊使) 등을 지냈으며, 1603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품되었다. 이듬해 전라도 병사가 되고, 이어 경상우도 병사 겸 진주 목사와 황해도 병사를 역임하였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의 폐위를 적극 반대하다가 삭직당하였다. 인조 1년(1623) 인조반정 후 포도대장에 등용되었으며, 경상좌도 병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왕을 따라 공주에까지 호종하였다. 뒤에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무(貞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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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정무공 오정방 고택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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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암

국사봉 정상으로 향하면 국사암이라는 작은 절이 바위 틈새를 비집고 앉아 있다. 법당 오른쪽 옆으로 국사봉의 궁예미륵이라 불리는 세 개의 아담한 미륵이 있다. 그러나 이 미륵은 미륵이라기보다 석인상에 걸맞을 정도로 몸의 전체적인 비례에 비해 모자가 거대하고 손 모양도 수인이 아니라 선비들이 합장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목도 지나치게 짧으며 얼굴의 윤곽에는 불상이 주는 이미지나 친근미가 나타나 있지 않는다. 석불의 발목 이하는 땅에 매몰되어 있다. 지상에 노출된 본존의 높이는 320cm이고, 3단의 원형보개를 육계부분에 끼워 놓았다. 얼굴은 타원형으로 두 귀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으며,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에서 손가락을 안으로 모으고, 왼손은 배에 대고 손가락을 쫙 펴고 있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은 통견으로, 양팔에 도식적인 주름을 도시적으로 새기고 있다. 하반신에 U자형으로 주름에 있는 것으로 봐서 군의를 가슴 부위에서 묶은 것으로 보는데, 허벅지 위에 커다란 연화문을 새겨놓았다. 우협시와 좌협시 역시 둥근 보개를 쓰고, 본존과 동일한 표현자세를 하고 있는데 크기가 약간작고, 들고 있는 지물 육화장과 합이 다를 뿐이다. 불상의 후면에는 아무런 조각을 가하지 않았다. 이 석조삼존 입상은 조각수법이나 형태를 보아 조선후기나 근대에 미륵신앙의 유행과 더불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깨끗한 전통적인 한국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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