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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헌수승전비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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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헌수승전비 소개

양헌수승전비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1995년 11월 14일 인천광역시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되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있다. 가로 39㎝, 세로 21㎝, 높이 140㎝로 단층 1칸의 비각에 안치되어 있다. 비석의 후면에는 승전 기록이 음각되어 있다. 1972년 7월 3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고 1974년 비각의 단청을 보수하였다. 프랑스는 1866년(고종 3) 10월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로마가톨릭교회)탄압을 구실삼아 극동함대 소속 군함 7척으로 조선을 침입하였는데(병인양요), 당시 순무천총이었던 양헌수가 삼랑성(정족산성)에 강계(江界) 포수 500여 명을 매복시켰다가 야간에 기습공격하여 피에르 G.로즈(Pierre Gustave Roze)가 이끄는 160명의 해병을 무찔렀다.10월 3일 쳐들어왔던 프랑스군은 사망 6명, 부상 30여 명의 손실을 입고 10일후에 간신히 갑곶으로 패주하였다. 이에 강화군민들이 비를 세워 그의 공적을 기리고자 하였다. 양헌수 장군의 자는 경보, 본관은 남원으로 현종 4년(1838)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가 병인양요시 공을 세워 한성부좌윤으로 특진되었으며 이후 부총관, 금위등 중군을 거쳐 형조판서, 금위대장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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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헌수승전비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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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헌수승전비 특징

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병인양요, 삼랑성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hook

양헌수승전비 여행 관련어

삼랑성 병인양요 기념물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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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다른 지역

갑곶돈대

갑곶돈은 고려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며,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이다.삼국시대 강화를 갑비고차 (甲比古次)라 부른데서 갑곶이라 이름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고려 때 몽고군이 이곳을 건너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워도 건너갈 수 있을 텐데’라 한탄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다.갑곶돈대는 고려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후 조선 인조 22년(1644)에 설치된 제물진(갑곶진)에 소속된 돈대로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다. 고종 3년(1866) 9월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극동 함대가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0월에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은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게 패하여 달아났다. 1977년에 옛터에 새로이 옛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이 이루어졌다. 지금 돈대안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 면적 - 3,475㎡
경치가좋은 사진찍기좋은 쾌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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