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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성지 여행 정보

놀러의 인공지능이 분석한 죽산성지 여행의 다양한 정보와 주변의 숙소들을 알아보세요.

죽산성지 소개

죽산성지
깨끗한 전통적인 한국적인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교우들이 살륙됐던 처형지와 교우들을 끌어다 심문과 고문을 하던 곳이다. 충청·전라·경상도로 갈라지는 주요 길목인 죽산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조선 시대에 도호부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현재 죽산면사무소 자리에서 천주교인들이 참담한 고문 끝에 처형되었다. 여기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은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그 이름이 밝혀진 이만해도 25명에 이른다. 하지만 척화비를 세우고 오가작통(五家作統)으로 사학 죄인을 색출,무차별하게 천주교인들을 끌어다가 처형하던 당시 상황으로 보아 순교자들이 더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이진(夷陳)터다.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竹州山城)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이다. 그래서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으로 불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병인박해를 지나면서 이진터는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 터]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죽산에는 또 두들기라는 곳이 있다. 죽산 읍내에서 15리쯤 지금은 삼죽면 소재지로 80여호가 사는 큰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인가가 드문 작은 주막거리였다고 한다. 이 주막거리는 용인, 안성, 원삼 등지에 사는 교우들이 포졸에게 잡혀 가는 호송길에 잠시 쉬어 가는 곳이 되곤 했다. 포졸들은 줄줄이 묶어둔 교우들을 툭하면 갖은 트집을 잡아 두들겨 패곤했는데 그 연유로 두들기는 두들겨 맞는 곳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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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성지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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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성지 특징

이곳은 5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미리내, 안성쑥고개부대찌개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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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암

국사봉 정상으로 향하면 국사암이라는 작은 절이 바위 틈새를 비집고 앉아 있다. 법당 오른쪽 옆으로 국사봉의 궁예미륵이라 불리는 세 개의 아담한 미륵이 있다. 그러나 이 미륵은 미륵이라기보다 석인상에 걸맞을 정도로 몸의 전체적인 비례에 비해 모자가 거대하고 손 모양도 수인이 아니라 선비들이 합장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목도 지나치게 짧으며 얼굴의 윤곽에는 불상이 주는 이미지나 친근미가 나타나 있지 않는다. 석불의 발목 이하는 땅에 매몰되어 있다. 지상에 노출된 본존의 높이는 320cm이고, 3단의 원형보개를 육계부분에 끼워 놓았다. 얼굴은 타원형으로 두 귀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으며,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에서 손가락을 안으로 모으고, 왼손은 배에 대고 손가락을 쫙 펴고 있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은 통견으로, 양팔에 도식적인 주름을 도시적으로 새기고 있다. 하반신에 U자형으로 주름에 있는 것으로 봐서 군의를 가슴 부위에서 묶은 것으로 보는데, 허벅지 위에 커다란 연화문을 새겨놓았다. 우협시와 좌협시 역시 둥근 보개를 쓰고, 본존과 동일한 표현자세를 하고 있는데 크기가 약간작고, 들고 있는 지물 육화장과 합이 다를 뿐이다. 불상의 후면에는 아무런 조각을 가하지 않았다. 이 석조삼존 입상은 조각수법이나 형태를 보아 조선후기나 근대에 미륵신앙의 유행과 더불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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