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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재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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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재 소개

지산재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지산재는 정면 네칸, 측면 한칸의 팔작지붕인데 중앙 세칸은 마루바닥이고 양퇴간은 방을 놓아 일반 민가와 같은 인상을 준다. 신라 말의 대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선생을 배향(配享)하고 있는 사우(祠宇)이다. 1737년(영조(英祖) 13년)에 이 곳에 영당(影堂)을 세우고 고운(孤雲)선생의 영정을 봉안하다가 1846년(헌종(憲宗) 12년) 지산재(芝山齋)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1886년 대원군(大院君)의 서원철폐(書院撤廢) 때 훼철(毁撤) 되었다가 1922년 다시 현 사우(祠宇)를 건립,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곳에는 지산재(芝山齋)(강당(講堂))와 내외삼문(內外三門), 영당(影堂) 등이 있는데 문화재(文化財)로 지정(指定)된 것은 지산재(芝山齋) 1동(棟)이다. 이 건물은 정면(正面) 4칸 , 측면(側面) 1칸, 팔작(八作)지붕인데 중앙(中央) 3칸은 마루바닥이고 양퇴간(兩退間)은 방을 놓아 흡사 일반 민가와 같은 인상을 준다. 지산재(芝山齋)의 편액(篇額)은 고당(顧堂) 김규태(金奎泰)의 글씨이며, 1985년 건물좌편 공지에 새로 유허비(遺墟碑)를 세웠다. 당초(當初) 배향(配享)된 인물은 최치원(崔致遠)선생을 주벽으로 한 최운한(崔雲漢), 최형한(崔亨漢), 정오도(鄭吾道) 등 4위(位)였으나. 1922년(年) 復設(부설)하면서 고운선생(孤雲先生)만 배향(配享)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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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재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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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재 특징

이곳은 20대, 3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지산제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hook

지산재 여행 관련어

지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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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희가옥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옛 집터를 그 후손들이 여러차례 고쳐지은 집이다. 이 집은후손들이 여러 차례 고쳐 지은 집으로 현존 가옥은 1917년 건축한 것이다. 예전에는 더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현재는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 대문등이 남아있다. 대문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이다. 사랑채는 정면 네칸 측면 한칸으로 앞뒤로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두벌대 기단위에 덤병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의 방 3개와 한칸의 대청을 1단 높혀 누(樓)마루로 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여섯칸, 측면 한칸에 전후좌우에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층 쌓기의 외벌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앞열은 원형 그 외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원형 기둥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내부가구는 고주위에 대량을 걸치고 판대공을 놓았으며 구 위에 종도리를 놓았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반의 부엌, 두칸의 대청, 한칸의 방으로 되어 있다. 창호는 전체가 양쪽으로 열어지는 문이며, 방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넉살창이 있다. 숭정기원후오갑정사윤이월초구일(崇禎紀元後五甲丁巳閏二月初九日)이라는 상량문에 글씨가 쓰여 있는데 이것으로 건립연대가 1917년임을 알수 있다. 사당은 고경명장군과 그 아들 종후, 인후 형제의 부조묘이다. 이 사당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으로 앞에만 마루가 있으며 맞배지붕이다. 외별대의 낮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현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첨자형의 포로 결합하였고, 초익공 위에는 용두를 빼내고 장혀와 굴도리를 얹었다. 내부가구는 대량위에 동자주를 얹고 종보를 걸친 뒤 그 위에 다시 판대공을 놓았으며, 겹처마에 조잡한 모조 단청을 하고 있다. 건립연대는 안채보다 빠른 시기로 추측된다.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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