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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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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 소개

청룡사
안전한 전통적인 한국적인

청룡사(靑龍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의 말사로,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다. 922년(고려 태조 5)에 도선(道詵) 국사의 유언에 따라 태조 왕건이 어명을 내려 창건했다. 풍수지리적으로 한양의 외청룡(外靑龍)에 해당하는 산등에 지었다고 하여 사호를 청룡사라 하였다. 1036년(정종 2년)에 만선 비구니스님이 퇴락한 절을 창건 이후 처음으로 중창하였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창하여 10차의 중창 역사를 갖고 있다. 1923년 다시 옛이름인 청룡사로 불리게 되었고 1950년대에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으며 1973년에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건배경과 역사청룡사(靑龍寺)는 922년(태조 5) 도선(道詵, 827~898) 국사의 유언에 따라 왕명으로 창건되었다. 풍수지리적으로 한양의 외청룡(外靑龍)에 해당되는 산등성이에 지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청룡사라 하였다고 한다. 제1대 주지로 비구니 혜원(慧圓) 스님이 주석한 이래 줄곧 비구니 스님만이 주석한 것이 특색이다. 고려에 와서는 1036년(정종 2)에 만선(萬善) 스님이 처음으로 중창하였고 1158년(의종 12) 회정(懷正) 스님이 두 번째로 중창하였는데, 이때 이 부근에서는 청룡사 동북쪽 고개 너머에 있는 보문사(普門寺) 창건 이후로 43녀 만에 처음 세워진 절이라 하여 "새절 승방"이라고도 불렀다. 1299년(충렬왕 25) 중국 원나라의 침입으로 절이 황폐화되자 지환(知幻)스님이 중창하였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비 혜비(惠妃)가 머물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태조의 딸 경순 공주가 머물렀으며, 1405년(태종 5) 무학(無學) 대사를 위하여 왕명으로 중창했다. 창건 당시 도선 국사를 위하여 창건한 이래 두 번째로 왕명에 의한 중창인 것이다. 이어서 1512년(중종 7)과 1624년(인조 2)에도 법공(法空)스님과 예순(禮順) 스님이 각각 중창하였다. 1771년(영조 47)에는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가 이곳에 있었다 하여 영조가 직접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글을 내려 비석과 비각을 세우게 했는데, 이때 절 이름을 잠시 정업원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 비석과 비각은 현재도 절에 남아 있다. 1813년(순조 13)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이듬해 묘담(妙潭)·수인(守仁) 두 스님에 의해 중창되었고 1823년(순조 23) 왕명으로 다시 옛 이름인 청룡사로 고쳐 부르게 하였다. 1902년(고종 6) 정기(正基)·창수(昌洙) 스님이 중창하였고, 1918년과 1932년에 상근(詳根) 스님이 중창하였다. 근대에 와서는 1954년~1960년 사이에 윤호(輪浩) 스님이 전체적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고 대웅전은 다시 1973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룡사는 왕실의 여인과 관계가 많은 곳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고려 말의 명신 익재 이제현(李齋賢)의 딸이자 공민왕비인 혜비(惠妃)가 이곳에 거주하였으며, 또 조선 초 태조의 딸 경순 공주가 이곳으로 와 머무는 등 왕실과의 관계가 많았던 것이다. 특히 세조에 의해 폐위되고 강원도 영월까지 유배가 결국 그곳에서 죽게 된 단종(端宗, 1441~1457)은 유배 갈 때 왕비 정순 왕후와 이곳 우화루(雨花樓)와 영리교(永離橋)에서 마지막 이별을 하고, 이어 왕비는 영월이 있는 동쪽이 가장 잘 보이는 이곳 청룡사에서 스님이 된 비극이 서려있기도 하다.* 관람포인트 정순왕후의 비인 정업원구기비(淨業院舊基碑)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비각의 편액은 영조의 친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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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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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 특징

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안성 청룡사, 안성 서운산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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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복궁은 1395년 태조 이성계에 의해서 새로운 조선왕조의 법궁으로 지어졌다. 경복궁은 동궐(창덕궁)이나 서궐(경희궁)에 비해 위치가 북쪽에 있어 '북궐'이라 불리기도 했다. 경복궁(사적 제117호)은 5대 궁궐 가운데 으뜸의 규모와 건축미를 자랑한다.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식을 가진 왕들을 보면 제2대 정종, 제4대 세종, 제6대 단종, 제7대 세조, 제9대 성종, 제11대 중종, 제13대 명종 등이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상당수의 건물이 불타 없어진 아픔을 갖고 있으며, 고종 때에 흥선대원군의 주도 아래 7,700여칸에 이르는 건물들을 다시 세웠다. 그러나 또 다시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면서 왕조의 몰락과 함께 경복궁도 왕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경복궁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경회루와 향원정의 연못이 원형대로 남아 있으며, 근정전의 월대와 조각상들은 당시의 조각미술을 대표한다. 현재 흥례문 밖 서편에는 국립고궁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고, 경복궁 내 향원정의 동편에는 국립민속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 주요문화재 1) 경복궁(사적 제117호) 2) 경복궁 근정전(국보 제223호) 3) 경복궁 경회루(국보 제224호) 4) 경복궁 자경전(보물 제809호) 5)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보물 제810호) 6) 경복궁 아미산굴뚝 (보물 제811호) 7) 경복궁 근정문 및 행각(보물 제812호) 8) 경복궁 풍기대(보물 제847호)
화려한 단골이많은 경치가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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