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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박물관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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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박물관 소개

옛길박물관
경치가좋은 유명하지않은 숨어있는

* 길 위에서 역사를 만난다, 옛길박물관(문경새재 박물관) *1997년에 개관한 박물관으로 길 위의 역사 고개의 문화 옛길박물관이다. 문경은 우리나라 문화지리의 보고(寶庫)이자 길 박물관이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의 소통로(疏通路)로서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로 불리던 ‘문경새재’(명승 제32호)가 있고, 우리나라 최고(最古, 서기 156년 개척)의 고갯길인 ‘하늘재’, 옛길의 백미(白眉)이자 한국의 차마고도로 일컬을 수 있는 ‘토끼비리’(명승 제31호) 또 영남대로 상의 허브 역할 담당했던 유곡역이 있다.이러한 옛길관련 문화유적은 이름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길’로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다. 옛길박물관은 이러한 문경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잘 나타내기 위하여 건립된 박물관으로 당초 향토사 중심의 문경새재박물관을 리모델링하여 2009년 재개관하였다. 옛길 위에서 펼쳐졌던 각종 문화상을 옛길박물관에 담아내고 있다. * 옛길박물관 제대로 알고 즐기자, 전시실 안내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3개 전시실과 1, 2층 중앙홀, 수장고, 영상실 등을 갖추고 있고, 야외전시장도 조성되어 있다. 총 4,2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한다. 제1전시실(주흘실)에는 문경관문, 영남대로, 문경의 전투, 경상감사 도임행차(慶尙監司到任行次), 제2전시실(조곡실)에는 문경의 문화와 의·식·주생활, 집과 모둠살이, 신앙과 의례, 생업기술 등에 관한 소장품 및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제3전시실(조령실)에서는 굽다리접시·토기항아리 등 신라시대 토기가 주를 이루는 매장문화재, 1724년(경종 4)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 이치(李治)가 그린 옥소(玉所) 권섭(權燮) 영정(影幀), 선조(宣祖)가 홍인걸(洪仁傑)에게 하사하였다고 전해지는 어필(御筆) 및 홍인걸의 유품인 투구, 김승주 삼공신(三功臣) 회맹록(會盟錄) 판본(板本), 주두업(周斗業) 지석(誌石) 등에 관한 전시가 이루어지며, 야외에는 금학사지삼층석탑, 서낭당, 연자방아, 옹기와 장독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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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박물관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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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박물관 특징

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새재박물관, 새재도립공원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hook

옛길박물관 여행 관련어

박물관 견학 야외전시 문경새재 전시관 학예연구사 석탄박물관 문화상 새재박물관 새재도립공원 세트장 자연생태공원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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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박물관 근처 숙소추천

옛길박물관 주변에는 총 1개의 숙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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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산성

* 삼국시대부터 전해온 천연의 요새, 고모산성, 영남대로 옛길 *영남대로 옛길은 고모산성과 토끼비리(토끼벼루의 사투리)가 중심축으로 진남교반 위의 절벽을 넘어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의 소원과 집념이 느껴지는 관광지다.고모산성은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고모산(姑母山)에 있는 포곡식 산성으로 본성 1,256m, 익성 390m를 합해 총 1,646m에 달한다. 산성으로 서벽은 사방에서 침입하는 적을 모두 방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축조연대는 156년 이후, 2세기 말경으로 추정된다. 서쪽과 남쪽은 윤강이 감싸고 있고 동쪽에는 조정산(810m)에서 뻗어내린 험한 산등성이가 있다. 따라서 서쪽은 절벽을 그대로 이용하여 바깥쪽만 쌓는 편축식(片築式)으로, 나머지 삼면은 지세에 따라 성벽 안팎을 쌓는 협축식(夾築式)으로 성벽을 쌓았다.* 고모산성의 사문지 *고모산성 서문지는 진남휴게소 북단에서 산성내로 오르는 소로길이 개설되어 있던 곳으로 성외에서 가장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지점이다. 또 서문지 부근 지하에는 약 1,500여 년 전의 요새로 짐작되는 목조 건축물과 유물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목조 건축물은 남북 길이 12.3m, 동서 길이 6.6~6.9m, 높이 4.5m 규모의 3층 구조(상층 2.1m, 중층 1m, 하층 1.4m)로, 창고나 지하 요새, 저수지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남문지는 성내로 진입하는 정비 도로가 있던 곳이며, 동문지, 북문지와 성벽을 볼 수 있다. 곡성 및 치성, 수구, 연못지도 있으며, 성벽을 따라 가다보면 영남대로 옛길로 갈 수 있다. 진남문을 지나 성벽 안쪽으로 가면 최근 복원한 주막거리가 있다. 고모산성을 중심으로 주변에 고부산성, 마고산성, 희양산성, 조령산성 등 많은 산성이 위치하고 있으며 연이어 있는 영남대로의 험로인 토끼비리와 함께 자주 이야기되고 있다.
경치가좋은 아늑한 편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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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터산촌생태체험마을

* 견훤왕이 호연지기를 기르던 곳, 궁터마을 *낮에는 너무도 고요해 찾아드는 산새와 벗하고 밤이면 머리맡으로 별들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별똥별이 떨어지는 곳, 그래서 떠날 때 더없이 아쉬움이 남는 마을이 있다. 문경시 궁터마을이 바로 그곳. 32번 국도를 빠져 나와 구불구불 덜컹이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면 찾을 수 있는 곳으로 후백제 견훤왕의 아버지 아자개의 고향이며, 견훤왕이 어린 시절 호연지기를 기르던 곳이다. 마을 뒷산에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수행처가 자리한 신성한 터이다. * 궁터마을의 특이한 체험 *궁터마을 팜스테이는 '건강체험 마을'의 특색을 갖추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전통무예 수련과 전통 침놓기 등과 함께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치료법을 통해, 찾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식이 요법 등을 권해 주기도 한다고 한다. 산간마을이므로 농사체험은 비탈진 밭일이 주가 되는데 봄에 활짝 꽃망울을 터뜨리는 배나무 농사일부터 버섯채취까지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다. 또 목재를 이용한 나무 깎기로 찻잔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문경새재가 인근인데 이 고개를 넘어가면 쌍용계곡, 문경온천에 이른다. 또한, 각종 석탄 관련 전시물을 볼 수 있는 석탄박물관도 권할 만하다.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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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룡사

* 수많은 문화유산이 있는 곳, 김룡사(김용사) *김룡사는, <운달산김룡사사적서>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10년(588) 운달 조사가 개선하여 사명을 운봉사라 하였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본래의 절 이름인 운봉사라 사명이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중에 전해지는 괘불화기에도 운봉사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룡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의 김룡사가 큰절의 초창은 인조2년에 수행 공덕으로 고명했던 혜총선사가 제자들과 힘을 모아 이룩하였으며 그 후 소실된 것을 의윤, 무진,대휴의 세분 대사가 옛모습을 되살려 놓아 번창시에는 48동에 건평 1,188평이나 되었으나 현재는 대소 전각 30여 채가 남아있다. 험상한 모습의 사천왕 신장상이 방문객을 압도하고 대웅전을 위시한 고색 창연한 전각들이 그 옛날의 창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경흥 강원 건물은 국내 최대 강원건물의 하나로 300명을 동시에 수용 할 수 있는 온돌방으로서 그 부엌아궁이는 어린 학생들이 걸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크다.  인조 27년 설잠대사가 조성한 대웅전의 불상은 그 규모가 웅대하며 기예 또한 현묘하고 성균대사가 만든 후불 탱화가 유명하다. 고종26년에 사증대사가 조성한 거대한 쾌불탱화를 비롯한 죽은 사람의 생,전사가 기록 영화처럼 비쳐진다는 거울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소장하였으며 석탑과 석상을 절뒤에 세운것은 그 선익을 진압한다는 뜻이며 혹은 산혈의 촉맥을 보우하는 뜻이라 한다. 김용사에서 특이한 것은 절 입구에 지은 지 300여년 된 해우소 (근심을 해소시키는 장소라는 의미의 화장실) 가 있는데 토속적인 목조 건물로 꼭 한번 확인하기를 권하는 특별한 장소다.  * 운봉사에서 김룡사가 된 이야기 *김룡사의 사명은 원래 운봉사였는데 김룡사로 바뀐 연유는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은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지어 이곳 운봉사 아래에 피신하여 숨어 살면서 신녀가를 만나 매양 지극한 정성으로 불전에 참회하더니 한 아들을 낳아 이름을 용이라 하였다. 그 이후부터 가운이 크게 부유해져 사람들은 그를 김장자라 하였고, 이로 인하여 동리 이름 또한 김룡리라 하였으며, 운봉사 역시 김룡사로 개칭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절은 최소한 18세기 이후 김룡사란 이름으로 되었다고 생각된다.
엄숙한 조용한 숨어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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